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로 안정됐던 휘발유 값이 명절을 앞두고 들썩이는 모양새다. 지난 연말부터 오르기 시작한 국제원유 가격이 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의 오름세가 지속될 경우 국내 유류세 인하분이 상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치솟는 유가에 놀란 정부도 4월 종료 예정인 유류세 인하 기간 연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날(28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휘발유 가격은 전일 대비 2.63원 오른 리터(ℓ) 당 1658.89원을 기록했다. 특히 서울은 평균 1731.52원으로 집계되면서, 4개월만에 다시 리터당 1700원대로 뛰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1월 물가 안정과 서민 부담 경감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20% 인하했다. 이에 따라 휘발유는 리터 당 164원, 경유는 116원, LPG는 40원 내리면서 전국 휘발유 가격이 9주 연속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휘발유 가격이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서 유류세 인하 전인 1800원대로 다시 가격이 상승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같은 가격 상승은 석유제품의 재료인 원유 가격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86.61달러를 기록했다. 영국 브렌트산 원윳값도 배럴당 89.34달러로, 이달 초와 비교할 때 10달러가량이 올랐다. 이는 2014년 10월 이후 7년래 최고 수준으로 배럴당 90달러대 돌파를 목전에 뒀다.
국제 유가는 당분간 오름세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도 불구하고 석유 수요가 늘어나는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위험 고조,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소극적 증산 등 지정학적 위험 및 수급 불안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최대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국제 기준유종인 브렌트유 가격이 3분기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하며 2023년까지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도 지난 16일 “유가가 올해 중 일시적으로 100달러를 넘을 수도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국제유가가 국내에 2~3주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점을 볼 때, 현재와 같은 원윳값 상승세는 국내 유류세 인하 효과를 상쇄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정부도 오는 4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할 예정이었던 유류세 인하 조치 재연장 카드를 검토 중이다.
정부는 전날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제4차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국제유가 상승세가 향후 휘발유·경유 가격에 반영될 것”이라며 “국제유가 동향에 따라 유류세 인하조치를 연장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3월까지 상황을 지켜본 후 유류세 인하 조치를 3~4개월 가량 연장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 조치가 종료될 경우, 소비자들에게 물가 상승 압력이 더 가중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화에서 “당장 지정학적·불안 요인들이 해소되지 않으면 유가는 높은 수준에서 강세를 보일 것”이라며 “가뜩이나 물가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유류세 인하) 정책 연장을 통해 소비자 가격을 낮춰주는 게 좋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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