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명절 분위기가 안 난다고들 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의 심상치 않은 확산세 때문이겠죠. 가족들과 만나고 웃고 떠드는 것마저 조심스러워해야만 하는 현실이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는 합니다.
오미크론 변이가 대유행하면서 한국 정부의 대응 방식이 바뀌기 시작했죠. 그 전에는 누구든 PCR(유전자 증폭) 검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2월 3일부터는 60세 이상과 밀접 접촉자 등만 PCR 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자가검사키트를 활용해야 하죠.
이제 자가검사키트는 마스크만큼이나 중요한 아이템이 됐습니다. 약국에 자가검사키트를 구입하러 가려는 찰나, 아직 뜯지 않은 미국산 자가검사키트 한 세트를 발견했습니다. CES2022 주최 측이 취재진과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배포했던 미국 헬스케어 기업 ‘애보트’가 제작한 제품이네요.
마지막 CES 후일담으로, 헬스케어와 디지털 헬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967년 시작돼 5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CES는 늘 가전제품, 정보기술(IT)이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애보트가 헬스케어 기업으로는 CES 역사상 처음으로 기조연설을 하면서 헬스케어가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로버트 포드 애보트 최고경영자(CEO)는 “기술은 의료를 디지털화, 분산화, 민주화하고 환자와 의사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고 건강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개인에게 맞춤형으로 정확한 케어를 제공하는 미래가 바로 지금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죠. 쉽게 말해서, 기술을 통해 소비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고도 자신의 신체 상태에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죠.
포드 CEO는 포도당, 젖산 등 운동과 관련된 신체 정보를 제공하는 웨어러블(입을 수 있는) 기기 ‘링고’를 선보이며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는 창문을 가진 것과 같다”고 소개했습니다. 당뇨병을 관리하기 위해 체내 포도당 수치를 관리해 식습관 개선을 유도하는 혈당관리 기기 ‘프리스타일 리브레’ 등도 소개했죠.
CES를 주최한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는 개막에 앞서 헬스케어 관련 기업이 100곳 이상 참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원격 진료와 모니터링, 웨어러블 건강관리 기기, 수면 분석 등과 관련된 제품과 서비스를 소개한 기업들이 곳곳에 배치됐습니다.
CTA는 세계를 선도할 혁신 기술과 제품에 ‘혁신상’을 주는데요. 한국무역협회가 10일 내놓은 ‘CES 2022를 통해 본 코로나 공존시대 혁신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혁신상 623개(한 기업이 2개 이상을 수상한 사례 있음) 중 헬스와 웰니스(신체와 정신 모두 건강한 상태를 뜻함) 분야가 77개(12.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2021년에도 10.8%(45개)로 가장 많긴 했지만, 다른 분야들에 비해 증가폭이 더욱 높았던 게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실 헬스케어와 디지털 헬스가 CES의 주요 토픽이 된 건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2010년 초반부터 CES 주최 측은 헬스케어와 디지털 헬스를 주목할만한 기술로 소개하며 이 분야로의 영역 확장을 시도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도 앞을 다퉈 이 분야로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구글은 웨어러블 기기 전문업체 핏비트, 아마존은 온라인 약국 업체 필팩, 마이크로소프트는 음성인식 기반 전자건강기록을 만들어주는 기술을 보유한 뉘앙스를 인수했죠.
하지만 기업들의 공격적인 헬스케어 분야 진출 움직임에 비해 소비자들의 눈길을 잡아끌만한 서비스나 제품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코트라의 2019년 CES 분석 보고서에는 “아직 테크 기업의 디지털 헬스가 소비자들을 위한 단계에 왔다고 말하기는 이른 감이 있다”는 평가가 적혀 있기도 하네요.
하지만 올해 CES에서 디지털 헬스에 대한 관심이 유독 확대된 건 코로나19 대유행 여파 때문일 겁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헬스케어와 디지털 헬스가 이 정도로 각광받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와 관련된 수요가 늘어났다는 점도 영향을 줬을 겁니다. NH투자증권은 “미국의사협회저널(JAMA)에 따르면 미국 내 원격의료 침투율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46%포인트 상승했다. 정신질환이나 당뇨와 같은 특정 질병과 관련된 애플리케이션 이용률도 급장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헬스케어와 디지털헬스가 떠오르면서 한국 기업들도 현지에서 적잖은 각광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 분야에서는 중소기업, 스타트업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혁신상을 받은 한국 기업의 서비스와 제품 중 특히 헬스와 웰니스 분야가 25개(28.7%)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스타트업 ‘펫나우’는 반려견의 비문(코무늬)을 통해 신원 확인을 할 수 있는 앱 서비스로 ‘CES 2022 혁신상’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았습니다. 올리브헬스케어는 개인의 근육량을 측정하고 체형관리 정보를 주는 개인형 기기를 통해 혁신상을 받았습니다.
그 밖에 AI를 활용한 동작인식을 통해 집에서도 정확한 자세로 운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 ‘엑서사이트’를 서비스하는 아이픽셀,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활용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내놓은 히포티앤씨 등도 주목받았죠.
이번 CES에서는 전 세계 기업들이 헬스케어 및 디지털 헬스 시장에 보다 진지하고 구체적인 제품과 사업 모델을 들고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뛰어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헬스케어 제품들은 아직까지도 TV, 냉장고, 스마트폰, 자동차 등 다른 제품군에 비하면 ‘필수 소비품’이라는 인식이 덜 한 측면은 남아 있습니다. 진단과 치료보다는 여전히 질병 예방과 간단한 측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도 아쉽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코로나19로 바뀐 건강에 대한 관심, IT기업들의 지속적인 투자와 사업모델 개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5세대(5G) 이동통신 등 디지털 헬스의 질을 결정할 기술들의 발전 등이 맞물리며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서비스가 나타날 것이란 기대를 품게 합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앞서 소개해드렸듯 디지털 헬스 분야에 뛰어든 한국 기업들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은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삼성증권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들은 하드웨어 제작과 원가 경쟁력은 뛰어나지만,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CES 2022에서 혁신상을 받은 한국 스타트업은 이러한 약점을 잘 보완해 줄 것을 예고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국내의 복잡한 의료 관련 규제,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 규모와 소비자들의 낮은 관심 덕분에, 오히려 사업 초기부터 북미와 유럽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구상한 점도 플러스 요인이라고 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스타트업 대표는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의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한국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푸념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헬스케어와 디지털 헬스 시장이 확장될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아직은 절대 고수가 없는 이 시장을 누가 장악해나갈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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