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조합-분양 관계자에 접근, 신규 입주 대단지서 암암리 거래
1채당 1만원까지 치솟기도… 거래절벽에 중개업소 경쟁 치열
불법 알고도 연락처 사들여 영업… 전문가 “개인정보 거래 위법 소지”
#1. 올해 3월 서울 송파구 대단지 아파트에 입주할 예정인 김모 씨(50)는 지난해 10월부터 공인중개업소 10여 곳으로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를 받고 있다. 연락처를 알려준 적도 없는 중개업소에서 입주 여부를 묻고 입주를 안 한다면 팔라고 유도하는 것.
이곳은 2000채 규모로 재건축한 단지다. 김 씨 같은 조합원이 많아지자 조합은 인근 중개업소에 ‘무작위 영업을 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내기까지 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 이름과 동·호수, 전화번호가 담긴 연락망이 통째로 2000만 원에 가까운 가격에 팔렸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전했다.
#2. 서울 강동구에서 5000채 규모 대단지 내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모 씨(55)에게 한 여성이 찾아왔다. 단지 전체의 집주인 명단과 연락처를 1000만 원에 팔겠다는 것. 입주가 끝나 연락망 가격을 기존 3000만 원에서 낮춘 가격에 넘기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씨는 “찜찜해서 거절했지만 중개업소 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연락망을 사서 영업에 쓰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새로 입주하는 대단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주인 연락망을 불법으로 사고파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최근 아파트 거래절벽 현상이 극심해지면서 매물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공인중개업소가 집주인 연락망을 확보해 전화로 ‘무작위 영업’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준공 3년 미만 대단지 아파트가 몰린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 성북구 일대 공인중개업소에서는 아파트 집주인 연락망을 암암리에 구해 파는 브로커 활동이 최근 들어 늘고 있다. 브로커들은 주로 입주를 앞둔 신축 대단지에서 활동한다. 입주 단지는 전월세, 매매 거래가 활발해 새로 문을 여는 공인중개업소가 많다. 인맥이나 정보가 부족해 기존 조합원 연락처들을 입수해 영업에 활용하는 것이다.
연락처 가격이 아파트 1채당 1만 원까지 치솟기도 한다. 성북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입주 3∼6개월을 앞두고 거래가 활발해질 시점에 브로커가 접촉해온다”며 “인근의 2000채 규모 단지 전체 연락망이 2000여만 원에 거래됐다”고 전했다.
복수의 중개업소에 따르면 브로커들은 재건축 조합 임원이나 분양 관계자 등에게서 연락망을 빼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 300채 규모 단지 입주자 모임 임원을 지낸 김모 씨(40)는 “브로커가 300만 원을 줄 테니 조합원 연락처를 팔라고 먼저 접근해왔다”고 말했다.
집값 상승으로 중개 수수료가 높아지며 중개업소 간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집주인 연락망은 중개업소 간 매물을 가로채는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최근 온라인 아파트 매물은 허위 매물을 가려내기 위해 동과 층을 밝히도록 하고 있다. 중개업소는 매물로 나온 집의 호수를 거꾸로 추적해 미리 확보한 연락망으로 집주인에게 “중개 수수료를 더 낮춰 줄 테니 우리에게도 매물을 내놔 달라”고 하는 식이다.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에 단독으로 매물을 받아 광고를 올렸는데 1시간도 안 돼 집주인이 다른 중개업소의 연락을 받았다고 들었다”고 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당사자 동의 없이 연락망이 거래되는 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지자체 등에서 단속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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