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신발 브랜드 올버즈(Allbirds)의 스니커즈 깔창 안쪽에는 ‘+9.9’라는 숫자가 쓰여 있다. 이는 원자재 구입부터 제조와 운송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탄소량(kg) 총량을 표기한 것이다. 이 브랜드는 일상용품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리기 위해 모든 제품에 이런 ‘탄소발자국 라벨’을 부착한다.
이 제품은 최근 롯데온 라이브 커머스 방송에서 평균 시청자 수의 10배에 달하는 총 6만3000여 명을 끌어모을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탄소배출량을 투명하게 공개한 제품이라는 게 큰 호응을 받았다. 올버즈는 신세계 강남점과 롯데 잠실점 등에서도 잇달아 팝업스토어를 선보이는 등 몸값이 높아졌다.
친환경이 최근 가장 핵심적인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얼마나 친환경적이냐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지표가 되고 있다. MZ세대의 가치소비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의 부상과 맞물리면서 소비에서도 뉴노멀이 됐기 때문이다.
○ ‘소비 뉴노멀’로 떠오른 친환경
친환경을 표방한 브랜드에 대한 관심은 MZ세대 소비자들 위주로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중고거래 시장이 대표적이다. 14일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따르면 트럭 방수포를 재활용한 스위스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의 지난달 검색량은 17만 건에 이른다. ‘환경을 해치니 옷을 자주 사지 말라’고 내건 파타고니아의 검색량 역시 지난달 7만6000건이었다. 한 달에 2000∼3000건씩 거래되는 두 브랜드의 MZ세대 거래 비중은 모두 60%를 넘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패션업계에서 친환경은 새로운 ‘슬로건 패션’이 되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과거 소신이 담긴 문구를 티셔츠 등에 직접 표현했다면 이제 친환경 소비 자체로 소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친환경 소재·공법을 개발해 품질을 높이는 과정 모두 비용이다. 그럼에도 친환경에 공들이는 이유는 사회적 신념을 주도하는 기업이 되면 충성 고객과 브랜드 파워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신발업체 크록스는 지난해 탄소배출량을 절반으로 감소시킨 새로운 바이오 소재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주가가 급등했다. 살충제 양을 줄이기 위해 유기농 면화를 소재로 쓰는 프랑스 스니커즈 ‘베자’는 인플루언서들이 잇달아 신으면서 홍보 효과를 내고 있다.
○ 폐페트병 옷부터 무라벨 생수까지
친환경이 기업 경쟁력과도 직결되며 국내 기업들도 공을 들이고 있다. 노스페이스는 이번 베이징 겨울올림픽 국가대표팀 단복에 리사이클링 소재를 썼다. 선수 한 명에게 주어지는 옷에는 총 200개에 이르는 폐페트병이 재활용됐다. 블랙야크도 폐페트병을 재활용한 의류 등으로 지금까지 페트병(500mL) 2500만 개분의 탄소발자국(약 940t)을 저감했다. 질바이질스튜어트와 닥스셔츠도 이달 폐페트병 소재로 만든 가방과 넥타이를 선보였다.
식품유통업계도 무라벨 경쟁이 치열하다. 롯데칠성, 제주삼다수, 오리온 등이 잇달아 무라벨 생수를 내놨다. 농심은 인쇄용 잉크 저감을 위해 라면 묶음포장을 투명비닐로 교체했다.
해외에서는 아예 탄소배출량을 ‘영양성분표’처럼 표시하는 브랜드도 많다. 그린워싱(위장 환경보호) 의심을 막고 소비자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대체 육류 브랜드 퀀, 귀리 음료사 오틀리AB는 상품 포장지에, 식당체인 저스트샐러드 등은 메뉴에 탄소발자국을 표시한다. 국내에서도 레고랜드는 벤치에 제품 소재로 쓴 우유 플라스틱 팩 개수(940개)가 기재된 ‘우유팩 라벨’을 달았다.
김익성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친환경이 반짝 이벤트가 아니라 생산·구매·AS 등 전 과정과 기업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내재화된다면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의식적인 소비를 고취시키는 ‘친환경 교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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