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한 해 시작과 끝을 알리는 ‘정기 주주총회(주총)’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재계는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비대면 경제 확산과, 사상 최대 매출 실적 경신 등 신기원을 이뤘지만 오미크론 변이 확산과 전 세계적인 공급망 리스크 확산 등에 대응해 체질 개선에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또 ESG 경영 등에 대해 높아진 관심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대책 강구, 소액주주 권한 강화에 따른 영향 등이 주요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주총 포인트는 여성 사외이사 선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주주행동주의 등으로 압축된다.
◆자본시장법개정 시행 앞서 女사외이사 선임 ‘봇물’
우선 ‘자본시장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라 자산 2조원 이상 상장 법인의 여성 등기이사의 선임이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이 법은 이사회를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하지 않도록 한 것으로, 올해 8월5일부터 적용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의 체질 개선에도 불구하고, 2021년 9월 말 기준으로 법 적용대상 기업(167개사)의 45%가(75개사)가 이사회 내 여성이사가 없다.
DL이앤씨, LS, 대우건설, 만도, 아시아나항공, 아이에스동서, 코웨이, 하이브, 현대두산인프라코어, 현대중공업 10개 사 등처럼 법 시행 전까지 임기만료 예정 이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번 주총을 시작으로 기업들의 여성 등기이사를 최소 1명 이상 확보하기 위해 대응에 나설 전망이다.
현재 삼성엔지니어링은 내달 17일 개최하는 제55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상 첫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할 예정이다. 이번 주총에서는 최정현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를 선임하는 안건이 오른다. 그동안 삼성엔지니어링 사외이사진은 모두 남성으로 구성됐다. 안건이 통과되면 올해부터 최 교수가 첫 여성 사외이사를 맡게 된다.
삼성전기도 내달 16일 개최하는 올해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이윤정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신규 선임한다. 현재 삼성전기 이사회 내 여성 구성원은 여윤경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유일하다.
삼성전자에서는 사상 첫 여성 의장 탄생도 기대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박재완 전 장관은 내달 10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ESG 경영 강화 흐름 속에 이번에도 사외이사에게 의장직을 맡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사외이사 중 최선임인 김선욱 전 법제처 처장이 의장으로 선임될 경우 첫 여성 의장이 탄생하게 된다.
◆‘총수도 처벌’ 중대재해법 시행에 이사회 진용 변화 주목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기업의 책임과 대응도 기업들의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주총을 앞두고 대표이사를 포함해 사내이사의 임기가 끝나는 기업은 포스코케미칼과 현대제철, HDC현대산업개발, 현대차다.
아직 주요 안건이 상정되지 않았으나 건설, 중공업, 철강 등 산재 발생 가능성이 큰 업종에 속한 회사의 경우 총수 일가가 법적 처벌 위험을 피하기 위해 대표이사 사임 등을 통한 이사회 구성 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HDC현대산업개발의 경우 광주 화정 아이파크 참사 등 대형 인명 사고를 내 참여연대와 소액주주들이 함께 HDC현대산업개발 측에 산업 안전 및 건설 품질 관리 전문 이사 선임과 안전보건이사회 설치를 요구할 예정이다. 이들은 관련 이사들에 대한 연임을 반대하는 등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계획이다.
또 총수일가로부터 분리된 독립적 사외이사 후보추천, 정관변경 등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고 손해배상청구를 비롯한 주주대표소송에 나설 예정이다. ◆뿔난 ‘동학개미’ 주주행동주의 시대의 개막
적극적인 주주 환원을 요구하는 이른바 ‘주주 행동주의’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소액주주들이 자산운용사와 목소리를 같이 하는 경우가 증가했다.
안다자산운용은 SK케미칼을 상대로 배당성향 확대 등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고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제기했다. 취지에 공감한 SK케미칼 소액주주연대는 의결권을 모아 안다운용에 위임해 실력행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안다운용은 주주제안 안건도 SK케미칼 이사회 측에 전달했다. 집중투표제도입 정관 변경과 배당액 증대, 감사위원회 위원인 사외이사 선임 등과 관련한 내용이 담겼으며 3월 주총에서 표 대결을 앞두고 있다.
사조그룹은 올해 주진우 회장의 장남 주지홍 부사장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이와 관련해 사조산업 소액주주 연대는 오너일가가 경영 승계를 위해 기업 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다며 반발하며 올 3월 주총에서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소액주주연대는 주주명부 열람을 청구하고 배당금 상향, 전자투표제 도입 등을 일반의안으로 제출할 계획이다. 최근 오스템임플란트 직원의 횡령 사건 등 기업가치 훼손를 막기 위한 적극적인 주주활동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관련 제도 변화 및 주주권 보호 인식 제고로 인해 기관투자자뿐만 아니라 소액주주의 주주 관여 또한 과거에 비해 더욱 주목을 받는 만큼 기업의 실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일반주주의 주주관여에 대해 소통 의지나 개선 노력을 보이지 않는 기업들은 더욱 적극적인 형태의 주주관여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진 스톡옵션 ‘먹튀’ 화두…비대면 주총 부각될 듯
최근 경영진의 스톡옵션(주식매수권선택권) ‘먹튀’ 관행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ESG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정기주주총회에서 분석대상 647개사 중 97개사가 주식매수선택권 부여 안건 111건을 발의하는 등 성과보상 체계에 변화에 바람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행 제도가 경제 전체 또는 산업 전반의 경기상승과 같은 경영자의 능력과 관계없는 주가의 상승분까지 경영자가 향유하거나 주주의 이익에 반해 무분별하게 부여되는 특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최근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권리 행사로 받은 주식을 한꺼번에 매도해 주가가 급락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국내 기업 대부분이 스톡옵션 부여 시점에 부여 개수, 행사가격 등이 정하는 ‘고정부’ 스톡옵션을 운용하고 있으나, 앞으로 고정돼 있지 않은 ‘변동부’ 스톡옵션으로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SG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일반적으로 주식매수권선택권은 경영자에게 자발적으로 기업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로, 궁극적으로 주주의 이익이 전제 되도록 고정부 스톡옵션(일시효력발생)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올해도 비대면 주총이 부각될 전망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부터 ESG 경영 차원에서 주주총회 약 2주 전에 발송하는 주주 대상 우편물을 전자공고로 대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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