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건설사 A사의 경기 화성시 아파트 공사 현장. 이곳의 자재 구매 담당자인 이모 씨(42)는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철근 값이 t당 107만 원으로 착공 시점인 지난해 2월(73만 원)보다 46.5%나 올랐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멘트 가격 인상으로 레미콘 값도 급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는 “공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이지만 일단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공사 중”이라며 “날이 풀려 여러 곳에서 공사가 몰리면 자재 조달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철근과 레미콘 등 자재 값 급등으로 건설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공사를 쉬었던 겨울철이 끝나고 공사가 본격화되는 다음 달이면 원자재 값이 추가로 올라 수급 대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30개 대형·중견 건설사 자재 구매 담당자가 모인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는 최근 긴급회의를 열고 현대제철에 철근 값 인상 반대 성명서를 전달했다. 협의회 측은 “철강회사가 철근 가격 인상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감당하기 힘든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반발했다.
건설사들이 단체로 공식 항의에 나선 건 현대제철이 철근 가격의 기준이 되는 1t당 고시 가격을 96만2000원에서 이달 99만1000원으로 올린 데 따른 것이다. 건설업계는 이번에 현대제철을 시작으로 동국제강 대한제강 등 다른 제강사도 철근 값을 줄줄이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제강사들이 이달 공장 개·보수를 하는 점도 철근 값 인상 요인이다. 탄소중립 등 친환경 사업에 힘을 쏟다 보니 개·보수 기간이 예년보다 길어졌고 철근 생산도 줄게 됐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다음 달 t당 철근 가격이 110만 원대를 넘어설 수 있다”고 했다.
건설 현장의 주요 자재인 레미콘 가격도 심상치 않다. 시멘트의 주원료로 쓰이는 유연탄 값이 급등하며 시멘트 값도 지난해 t당 7만5000원에서 올해 9만3000원으로 24% 올랐다. 국내 레미콘 업계 1위 삼표산업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해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기업이 된 점도 수급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삼표산업은 수도권 레미콘의 40%를 공급한다.
문제는 철근이나 레미콘 등 자재 수요가 지난해보다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착공된 건설 현장은 지난해 1억3530만 m²로 전년(1억2370만 m²)보다 9.3% 증가했다. 보통 철근과 레미콘이 건설 현장에 쓰이는 시기는 착공 이후부터 1년 6개월 사이여서 올해 수요가 더 몰린다는 얘기다.
특히 노노(努努) 갈등이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공사를 멈췄던 현장들이 3월부터 재개될 것으로 보여 수급난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 대형 건설사 현장소장은 “지난해 현장이 멈춘 기간만 두 달 넘어 3월부터 부지런히 공사해야 공기(工期)를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재 수급난이 심화되면 일부 건설 현장이 멈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용 부담이 커지면 착공을 아예 미루거나 가동을 중단하는 현장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분양가는 토지비, 건축비, 가산비 등으로 구성이 되는데 자재 값이 오르면 건축비가 오를 수밖에 없다”며 “올해 지방자치단체 분양가심의위원회에서 분양가를 결정할 때 자재 값 상승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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