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연이은 기업들의 횡령 소식에 ‘개미’ 투자자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국내 임플란트 1위 기업인 오스템임플란트에서 재무팀장이 2000억 원대 회삿돈을 빼돌린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수백억 원대 횡령 사건이 잇달아 터지고 있다.
횡령‧배임 사건이 보고되면 해당 기업의 주식 거래는 즉시 정지된다. 소액 주주들은 투자금을 꼼짝없이 묶인 채 한국거래소가 상장 폐지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 거래소의 심사가 길어지면 주식 매매 정지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소액 주주들의 몫이다. 기업들의 내부통제를 강화할 제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들어 상장사 4곳 ‘내부 횡령’으로 거래 정지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내부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해 거래가 정지된 종목은 오스템임플란트 세영디엔씨 계양전기 휴센텍 등 4개사다. 4개 상장사의 소액주주 수는 약 5만8000명으로 거래 정지된 주가를 기준으로 이들의 투자금은 1조2674억 원이 넘는다.
국내 기업들의 ‘내부 횡령’에 따른 거래 정지로 투자금이 묶인 소액 주주는 적게 잡아도 수십만 명이다. 2019년과 2020년 각각 거래가 정지된 코오롱티슈진과 신라젠을 포함하면 해당 소액 주주 수는 28만7860명이다. 이들의 투자금은 2조1038억에 달한다.
문제는 횡령에 따른 주식 거래 정지가 매년 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횡령·배임 사실을 공시한 상장사는 33곳으로, 전년(31곳)보다 소폭 늘었다. 코스닥 상장사의 횡령 공시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횡령 사실을 공시한 코스닥사는 2016년 8곳에 불과했지만 2017년 11곳으로 늘었다. 2019년(23곳)부터 3년 연속 20곳을 넘었다.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 이후 국내 기업들의 허술한 내부 통제시스템이 도마에 올랐다. 21일 국내 4대 회계법인 중 한 곳인 삼정KPMG가 발간한 ‘감사위원회 저널 20호’에 따르면 내부회계관리제도 ‘부적정’ 의견을 낸 감사보고서 가운데 ‘자금통제 미비’로 인한 비율이 2020년 12.4%(19곳)로 집계됐다. 반면 미국은 같은 이유로 부적정 의견을 받은 기업은 같은 해 0.3%(1곳)였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오히려 기업들의 감사 의무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회계업계·유관기관이 참석한 온라인 간담회에서 “중소기업에 회계투명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사 부담을 덜어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국내 내부회계관리 제도가 있지만 관련 처벌이나 제재 수준이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라며 “내부 통제에 소홀한 기업에 인적‧물적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인증 수준을 높여 설계‧운영의 효과성에 대한 감사를 의무화하더라도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도는 허상으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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