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백 값 아시아서 한국이 제일 비싸다
25개국 비교… ‘배짱 장사’ 논란
홍콩보다 120만원 비싼 1124만원
한국의 샤넬백 가격이 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높게 책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각국 물가 수준을 감안한 구매력평가(PPP) 환율로 환산한 가격은 스위스의 2배에 육박했다. 비쌀수록 잘 팔리는 한국 시장 특수성을 이용해 샤넬이 ‘배짱 장사’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21일 한국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KOTRA 무역관을 통해 전 세계 25개 매장에서 샤넬 대표 가방인 클래식 플랩백(미디엄)의 매장 판매가(세금 포함)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샤넬은 지난해 국내에서 4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이 제품 가격은 지난해 864만 원에서 1124만 원으로 1년간 30.1% 올랐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국 판매가(9825달러)는 조사 대상 25개국 중 4번째로 높았다. 한국보다 비싼 국가는 터키(1만6196달러), 브라질(1만2103달러), 호주(9908달러)로 터키와 브라질 물가가 지난해 각각 19.6%, 8.3% 폭등하며 환율이 요동친 것을 감안하면 한국 판매가가 사실상 2위다.
아시아권에서는 한국이 가장 비쌌고 이어 싱가포르(9817달러) 중국(9722달러) 인도네시아(9679달러) 대만(9574달러) 일본(9521달러) 홍콩(8773달러) 순이었다. 한국이 홍콩보다 약 120만 원 비싼 셈이다. 프랑스 등 유럽 7개국 가격이 모두 9225달러로 아시아권보다 대체로 낮았다. 한국보다는 70만 원 정도 싸다. 스위스(9223달러)와 영국(9118달러) 가격은 이보다 더 낮았다.
한국선 콧대 높은 샤넬, 7시간 줄세워… 유럽선 예약구매로 싸게
샤넬에 한국 고객은 봉? 상품 재고 물으면 “모른다” 답만… 매장 열기 전 대기 ‘오픈런’ 일쑤 물가수준 감안해도 스위스 2배… 비쌀수록 잘 팔려 한국엔 고가정책 매장당 매출액, 세계 평균의 3.6배
20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정문 앞. 개점 전인데도 90여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샤넬 매장 대기번호표를 받으려고 모여든 사람들. 70번대 번호를 받고 7시간 만인 오후 5시 30분 매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원하는 모델은 없었다. 직원에게 입고 시기와 다른 매장 재고 현황을 묻자 “모른다”는 답만 돌아왔다. 인기 모델 재고는 매장에 전화해도 알려주지 않고 현장에서만 확인해준다.
17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캉봉가의 샤넬 본점 상황은 사뭇 달랐다. 대기 없이 매장에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매장에 원하는 제품이 없으면 구매 예약을 걸 수 있다. 예상 대기 기간(2∼4개월)까지 친절하게 안내받을 수 있었다. 스위스 취리히 매장 역시 한국에선 ‘돈 있어도 못 사는’ 클래식 미디엄백을 대기 없이 바로 살 수 있다. 한국 샤넬 가격은 25개국 국가 중 네 번째로 높고 아시아에서는 가장 비싸지만 오직 한국에서만 ‘오픈런’이 펼쳐진다.
○ 한국 체감 가격, 미국 영국 스위스보다 높아
21일 동아일보와 한국경제연구원이 KOTRA 무역관을 통해 조사한 샤넬 가격을 각국 물가 수준을 감안한 구매력평가(PPP) 환율을 적용해 ‘샤넬지수’를 산출한 결과 한국의 샤넬지수가 1.23으로 조사 대상 24개국(대만은 PPP 환율 최신 통계 부재로 제외) 중 10번째로 높았다. 이는 PPP 환율을 적용한 가격을 샤넬 본사가 있는 ‘샤넬 본고장’인 프랑스 가격을 기준으로 따져본 지수다.
한국의 샤넬 지수는 미국(1.03), 일본(0.98), 네덜란드(0.98), 영국(0.91), 스위스(0.67) 등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들 국가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샤넬 가격보다 한국에서의 가격이 더 비쌌다는 뜻이다. 샤넬지수가 가장 낮은 스위스보다 무려 2배나 높았다. 한국 소비자가 123원으로 체감하는 가격을 스위스 소비자는 67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샤넬은 한국에서 지난해 네 차례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해 초 864만 원이던 클래식 미디엄백의 가격은 7월 971만 원, 11월 1124만 원으로 올랐다. 2015년 가격(538만 원)보다 두 배 넘게(109%)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8.1% 오르는 데 그쳤다. 한국 소비자들이 ‘호갱’(호구 고객이라는 은어) 취급 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금융 정보업체 밸류챔피언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샤넬 제품 가격 인상폭은 28%로 조사 대상 15개국 평균(17%)을 크게 상회했다. 샤넬은 국내 가격 인상에 대해 “마켓 간 현저한 가격 차이를 줄이기 위해 ‘조화로운 가격 정책’을 준수하고 있다. 한국 가격 역시 유로화 가격 대비 10% 범주 안에서 책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에서만 콧대 높은 샤넬”
샤넬이 유독 한국에서만 콧대 높은 가격 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비쌀수록 잘 팔리는 한국 시장 특유의 명품 선호 현상 때문이다. 자기만족형 소비를 중시하는 2030세대가 명품 주 고객층으로 급부상하면서 한국의 명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16조 원대로 커졌다. 미국(80조 원), 일본(32조 원), 영국(22조 원) 등에 이어 7위다. 국내에서 9개 매장을 운영하는 샤넬코리아 매출은 9300억 원(2020년 기준)으로 매장 한 곳당 평균 1000억여 원의 매출을 올렸다. 같은 기간 글로벌 점포당 평균 매출(약 286억 원)의 3.6배에 이른다. 국내 시장은 베블런 효과(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증가)가 뚜렷해 가격이 오르면 선호도가 높아진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명품 허들이 높아질수록 남을 모방하고 부를 드러내길 원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욕구를 더 자극하고 있다”고 했다.
잇따른 가격 인상으로 향후 추가 인상에 대한 기대감까지 높아지며 비싸도 사두는 게 이득이란 생각이 자리 잡았고, 이는 ‘오픈런’ 현상을 강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품은 너도나도 사는 ‘동조’ 현상과 아무나 못 구하도록 허들을 높이는 ‘차별화’를 토대로 영업한다”며 “명품 시장도 소비자 보호를 위한 고민이 다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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