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 라이트브라더스 대표(52·여)는 2017년 엑스레이로 중고 자전거의 사고나 수리 이력을 검증해 주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국내는 시장 규모가 작아 창업 초기부터 해외 진출을 준비했다. 김 대표는 “내 몸을 싣고 달리는 자전거의 안전성을 검증하고자 하는 건 글로벌 니즈”라며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생생한 경험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가고 싶다”고 말했다.
21일(현지 시간) 글로벌 혁신 기업들의 심장부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서니베일 한 호텔 세미나실에 김 대표처럼 세계 진출을 꿈꾸는 국내 스타트업 9개사 대표들이 모였다. 유전자 분석 플랫폼부터 친환경 일회용품 업체에 이르기까지 업종은 다양했지만 세계 시장을 겨냥하겠다는 의지만큼은 같았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방정식’을 습득하는 게 ‘제2의 벤처붐’에 힘입어 더 넓은 시장을 꿈꾸는 국내 스타트업들에 중요한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 더 넓은 시장 찾아 미국 간 스타트업들
스타트업 대표들은 20일부터 25일까지 롯데가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도전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기획한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실리콘밸리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모였다. 세계에서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기업)이 가장 많이 탄생한 실리콘밸리에서 현지 창업자나 벤처투자자들과 교류하면서 실리콘밸리 문화를 배우자는 취지다.
이날 참가한 유전자 분석 플랫폼 스타트업인 지니얼로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실리콘밸리 백화점 4곳에 ‘유전자 검사 키트’ 자판기 설치를 앞두고 있다. 타액 샘플로 암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험도 등을 저비용으로 분석해 알려주는 게 특징이다. 지훈 대표(41)는 “국내에서는 유전자 검사 중에서도 몇 가지 항목만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규제가 많아 사업 길이 막혀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미국에 진출했다”며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유전자 바이오랩에 입주해 4월경 본격적으로 미국 사업을 펼칠 계획”이라고 했다.
개인 맞춤형 미국 이민 신청 지원 플랫폼 로플리의 안준욱 대표(52)도 국내보다 미국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민자들이 많은 국가인 만큼 서비스 이해도가 한국보다 높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에서 채용도 진행 중이다. 안 대표는 “개발자와 마케터들도 ‘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수한 인력이 많다”고 했다.
○ 100조 원 ‘스타트업 천국’에 도전장
지난해 한국 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역대 최고인 11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시장과 비교하면 아직 작다. 미국 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10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구글, 트위터 등 전 세계 180개국 3만7000여 기업이 쓰는 협업 툴을 만든 스윗(Swit)의 이주환 대표는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는 소프트웨어들이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하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에서 검증되면 세계화는 더 쉬워진다”며 “실리콘밸리에 도전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언어와 네트워크, 경험의 부재다. 한국계 스타트업이 미국에서 투자받기란 한국에서보다 배로 힘들다. 진출 이후의 채용과 운영도 어렵다. 이날 행사에는 미국에서 활약 중인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VC) 관계자도 참석해 해외 진출 노하우를 공유했다.
지훈 지니얼로지 대표는 “해외 VC를 만날 때 어떻게 스토리텔링해야 할지 늘 고민”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범수 트랜스링크 인베스트먼트 부대표는 “우버는 미국에서 처음 투자받을 때 ‘Cabs suck(택시는 형편없어)’ 한마디로 끝냈다”며 “무엇이 문제라는 걸 투자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정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롯데벤처스는 해외 진출을 꿈꾸는 스타트업 지원을 지속한다. 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역량이 뛰어나도 현지 네트워크가 부족해 사업 기회를 놓치는 점에 주목해 이번 연수를 기획했다”며 “올해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2기를 모집하고 내년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함께 참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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