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2021년 연간 실적 발표를 앞둔 가운데, 사상 최대 수준의 영업적자를 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발전 연료비가 기록적으로 상승한데다 ‘연료비 연동제’ 시행이 미뤄지며 금융위기 당시보다 나쁜 실적을 냈을 것이란 분석이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전은 오는 24일 2021년 결산실적 잠정치를 공시할 예정이다. 한전의 지난해 3분기 누계 매출은 전력 판매량 증가로 1조1794억원 늘어난 45조564억원이었다. 그러나 연료비 증가에 영업손실은 1조1298억원에 달했다.
그동안 한전의 영업이익은 유가 변동과 전기요금 동결 등에 널뛰는 양상을 보였다. 최근 5년을 돌아보면 지난 2016년에는 저유가 호황 덕에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치인 12조원을 기록하고, 2017년에는 4조9532억원으로 감소했다.
이후 유가 상승과 정책 비용 등으로 2018년에는 2080억원, 2019년에는 1조2765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저유가 효과에 4조862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했다.
지난해에는 원유, 천연가스, 석탄 가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치솟아 영업적자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점쳐진다. 발전 연료비 증가분을 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의 시행이 지연되며 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리포트가 집계한 컨센서스(전망치)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해 5조1006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금융위기로 국제유가가 치솟았던 당시 기록한 영업적자 2조7981억원을 훨씬 웃도는 전망치다.
한전은 특히 4분기에 연료비가 급등해 영업적자 규모가 확 커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NH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2021년 4분기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71달러, 뉴캐슬 유연탄은 t당 146달러로 연료비와 전력구입비 모두 부담이 되는 수준”이라며 4분기에만 2조6000억원 규모의 영업적자를 냈을 것으로 분석했다.
아울러 일정 규모 발전 사업자가 전체 발전량의 일부를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신재생에너지의무공급(RPS) 비율이 오르며 정책 비용 부담도 커졌다.
한전의 올해 실적 전망도 밝지 않다. 정부가 예고한 대로 요금 인상이 이뤄져도,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더 가파를 수 있다. 앞서 정부는 올해 1분기 전기요금은 국민 생활 안정 등을 감안해 동결했다. 다만 4월과 10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기준연료비를 1킬로와트시(㎾h)당 4.9원씩 인상하기로 했다. 기후환경요금도 4월부터 1㎾h당 2원 오른다.
이와 관련해 메리츠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요금 인상이 시작되는 2분기 전까지는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고, 요금 인상보다 원가 상승이 더 크다”며 “현 요금 인상 시나리오에 변화가 없고, 80달러 내외의 유가가 유지된다면 2022년 10조원 이상의 영업적자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도 두바이유의 가격이 배럴당 80달러일 때 한전의 올해 영업적자가 12조8020억원에 달할 것으로 봤다.
이에 전문가 사이에서는 연료비 연동제의 작동과 수요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유가뿐 아니라 천연가스, 석탄 가격도 상당히 올랐는데, 올해 1분기는 요금이 동결돼 (한전 실적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며 “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외에 연료비 연동제를 통한 요금 인상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연료비 가격 측면에서) 거의 오일쇼크 시대와 비슷한 상황이다. 전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정책적 수단과 시장적 수단 모두 발동해야 한다”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에너지 효율 향상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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