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규제로 잔금대출이 안 되니 집주인들이 전세로 내놓고 있어요. 아파트를 분양받고 잔금 납부가 급한 집주인들이 5000만 원씩 가격을 낮춰 내놔도 전세 매물이 워낙 많으니 전세가 잘 나가지 않네요.”(성북구 공인중개업소 관계자)
이달 초부터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성북구 길음동 A단지는 총 2029채 규모다. 24일 현재 이 단지에서는 전체 규모의 절반이 넘는 1228채가 전세 매물로 나와 있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59m²(옛 20평대) 전세는 한때 8억∼9억 원을 호가했지만 요즘은 5억 원대까지 낮춘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바로 옆 단지도 상황이 비슷하다. 2019년 준공한 2000채 규모의 B단지에서는 지난해 전용 59m² 전세가가 7억 원까지 높아졌지만 최근 6억 원대로 낮춰 계약되고 있다. 호가는 5억 원대까지로 낮아졌다.
수도권에서 신축 대단지 입주가 많은 지역 위주로 전세 매물이 쌓이면서 전세가격 하락 폭이 커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아파트 매매가격이 하락하면서 강남3구 아파트 값이 일제히 하락세를 나타냈다.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2년 5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24일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서 21일을 기준으로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격이 전주보다 0.05% 내리며 3주 연속 하락 폭이 가팔라졌다.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역시 2019년 9월 이후 처음으로 전주 대비 0.01% 가격이 내리며 전세와 매매가격 동반 하락세가 나타났다.
전세는 입주 물량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하락폭이 커지고 있다. 서울 25개 구 중 가장 하락 폭이 큰 서대문구(―0.11%)와 성북구(―0.08%)는 올해 초부터 대단지 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이다. 부동산원은 “성북구는 길음뉴타운 신규 입주물량 영향으로 하락 폭이 커졌고, 서대문구는 홍제동 구축 단지 위주로 가격이 내렸다”고 했다.
인천 전세가는 전주 대비 0.12% 떨어져 하락 폭이 전주(―0.06%)의 2배로 커졌다. 인천 서구(―0.3%)와 연수구(―0.38%) 하락 폭이 컸다. 각각 검단신도시와 송도신도시 입주 물량이 많은 곳이다. 경기 역시 신규 입주 물량이 많은 의왕(―0.26%)과 안양(―0.12%)의 하락 폭이 컸다.
전세가격 하락세는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잔금대출까지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포함돼 잔금 내기 어려운 집주인들이 신축 단지에 바로 입주하기보다 전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려 하기 때문이다. 전세대출 금리가 오르며 세입자들이 이사를 꺼리는 상황까지 겹친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상과 대출규제로 매매가와 전세가 동반 하락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주간 동향에서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구) 중 유일하게 보합세로 버텼던 서초구 매매가격이 전주 대비 0.01% 떨어지며 2020년 6월 이후 1년 8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서울은 0.02% 내려 하락 폭을 유지했다.
다만 신규 입주 물량이 뒷받침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전세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기는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1만8907채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주택 실수요와 직결된 전세는 입주물량이 많으면 일시 하락할 수 있다”며 “2020년 7월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한 세입자들이 다시 전셋집을 찾는 4, 5월부터 시장 불안이 재연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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