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극동지역에서 호텔을 건설 중인 A중소기업.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전방위적인 경제 제재를 하면서 이 회사는 공사대금 2500만 달러(약 306억 원)를 언제 받을지 불투명해졌다. 일단 공사는 하고 있지만 협력업체 3곳에 공사대금을 지급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A사는 러시아 사업 비중이 80%에 이른다.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러시아 아파트 신축 공사도 무기한 연기됐다. A사 관계자는 “사태가 해결되어도 금융 제재가 풀려 거래가 정상화되기까지 6개월 걸린다고 보면 최소 1년은 러시아 사업 길이 막히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 대금 지급 못 받고 하역도 불가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2주째로 접어들면서 수출입 중소기업의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다. 7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국내 러시아·우크라이나 수출 중소기업은 6021개사에 이른다. 지난해 중소기업의 대(對)러시아 수출액은 27억5000만 달러로 전체 수출국 가운데 10위다. 하지만 대기업에 비해 대처 여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은 이번 침공에 따른 피해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에 토목 공사용 장비를 수출하는 B중소기업은 최근 해운회사로부터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장비를 실은 배가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에 접안할 수 없으니 중간 기착지인 터키 사피 항구에 장비를 내려놓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회사는 장비 보관비마저 매일 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B사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기업과 거래한 15년간 처음 겪는 일”이라며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거래처에 돈을 내라고 할 수도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기초 원료인 나프타를 러시아에서 주로 수입하는 플라스틱 업체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한국의 나프타 수입 비중 1위(23%) 국가다. 나프타 가격은 이미 지난해 대비 17% 오른 데 이어 공급 부족으로 추가 인상이 유력하다. 한국플라스틱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플라스틱 생산비에서 원료비가 83%로 중소기업들은 원료비가 오르면 회사 경영구조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국제유가 상승·물류 대란 맞물려 피해 커질 것”
당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현지에 진출해 있거나 직접 수출입하는 중소기업 위주로 피해를 입고 있지만 국제유가 상승과 물류 대란이 맞물리면 피해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기부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수출 의존도가 높은(30% 이상) 중소기업은 1000여 개사에 이른다. 이 중 100% 의존하는 중소기업은 316개사다. 중소기업계 한 관계자는 “한두 달 뒤면 코로나19에 버금가는 공급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기부가 마련한 중소기업 피해 신고센터가 2일부터 4일까지 접수한 피해 사례는 총 44건으로 ‘대금 미회수’가 70%로 가장 많았고 ‘물류 지연 및 중단’(11%)이 뒤를 이었다. 정부는 7일 피해 중소기업에 최대 10억 원의 긴급융자 지원, 반송 물류비 등 수출 바우처 지원, 대체 거래처 발굴 및 알선 등을 담은 대책을 내놨다. 중기부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에 수출 이력이 있는 업체 명단을 확보해 미리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맞춤형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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