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당뇨를 앓고 있는 A 씨(75)는 최근 요양원 입소를 고민 중이다. 식단 관리 때문이다. 현미밥 등 저당 식단을 신경써주던 아내가 지난해 세상을 떠난 뒤 딸과 며느리가 반찬을 해주지만 삼시세끼를 영양식으로 채우는 건 쉽지 않다. A 씨는 “혼자 먹는데 장보기나 조리 과정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환자식을 집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당뇨케어 식품’ 시장이 식품업계 블루오션이 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영양 기준을 통과한 식단이 가정간편식(HMR) 형태로 집 앞까지 배달되는 것이다. 고령친화식품 위주였던 케어푸드 시장이 ‘특수의료용도 식품’(메디푸드) 전문성 경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9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케어푸드 시장은 지난해 2조5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케어푸드는 산모나 영유아 등을 위한 건강식을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출산율 감소와 고령화 탓에 씹기 좋은 연화식, 저염식 등 실버푸드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2011년 5104억 원 규모였던 시장은 2017년 1조 원을 넘었다.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됨에 따라 규모가 더 커질 전망이다.
케어푸드 정점인 메디푸드 경쟁이 본격화된 건 2020년 식약처가 영양성분에 민감한 만성질환자를 위해 ‘식단형 식사관리 식품’ 유형을 신설하고 나서부터다. 식습관 개선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당뇨환자용 식단형 식품이 가장 먼저 개설됐다. 단백질 18g 이상, 나트륨 1350mg 이하, 당류 10% 미만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500만 명에 이르는 당뇨 환자 식단 시장이 열리자 병원식 경험이 있는 급식업체가 팔을 걷고 나섰다. 환자용 식단은 영양은 물론 질리지 않고 오래 섭취할 수 있도록 다양한 메뉴와 맛이 중요한데 대규모 식단 노하우가 있는 급식업체가 먼저 가능성을 본 것이다.
현대그린푸드는 최근 당뇨환자용 식단형 식품 24종에 대해 한국식품산업협회의 표시·광고 심의를 통과했다. 현재 시중에 출시된 당뇨 식품 중 식단 수가 가장 많다. 현대그린푸드는 2019년부터 서울아산병원 당뇨병센터와 혈당 개선 연구를 진행하면서 여주·꾸지뽕 등 당뇨에 좋다고 알려진 식재료 360가지와 이를 활용한 반찬 레시피 120종을 만들었다. 설탕 대신 홍시나 과일을 이용해 단맛을 내고 무화과, 포도 등에 들어있는 당 성분 ‘알룰로스’를 이용하는 식이다. 전자레인지에 2,3분 돌리면 되는 밀키트 형태로 이틀에 한 번 새벽 배송으로 배달한다.
녹즙 등 건강식 배송 강자인 풀무원식품은 지난해 7월 당뇨환자식의 정기구독 서비스를 가장 먼저 시작했다. 채소찬 2팩, 단백질찬 1팩, 밥 1팩 등 4팩으로 구성된 ‘당뇨케어 밀플랜’ 세트(16종)를 전날 조리해 다음날 새벽 배송하고 있다. 개인 설문을 통해 하루 필수 열량, 대사 건강지표에 맞춘 식단을 추천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상라이프사이언스는 백미 대신 현미와 렌틸콩, 퀴노아를 넣어 당 함량을 3g로 낮춘 ‘뉴케어 당플랜 볶음밥’을, hy는 22가지 곡물을 함유한 당뇨환자 식사 대용식 ‘잇츠온 케어온 당케어’ 등을 지난해 각각 출시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당뇨식단 배달서비스는 재료 선택과 조리의 번거로움을 줄여 만족도가 높다. 향후 식약처 기준에 따라 암환자용, 신장질환자용 식단 등도 추가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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