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에너지 제재’, 유가상승 압박… 업계 “사업계획 전면 수정할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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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産 원유 등 금수, 국내 영향은

“문제는 언제까지 오를지, 그리고 얼마나 더 오를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올해 초 세운 사업계획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할 듯합니다.”

미국의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금수(禁輸) 조치는 양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산업계 전체가 영향권에 들 수밖에 없다. 정유·석유화학업계는 물론이고 주요 제조업과 물류, 항공 등 산업 대부분의 영역에서 비용 부담 상승이 불가피하다.

9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산업 중에는 나프타를 핵심 원자재로 쓰는 석유화학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해 만들기 때문에 가격이 함께 움직인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9일 배럴당 66.98달러였던 나프타 가격은 올해 3월 8일 125.69달러까지 치솟았다.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처음으로 100달러를 넘긴 나프타 가격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80%는 국내 정유사로부터, 나머지 20%는 수입하고 있다. 수입 나프타 중 약 23%가 러시아산이다. 국내산이든 수입산이든 가격 부담이 커진 건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원가 부담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자동차와 가전 등 전방산업 시장이 위축돼 석유화학 제품과 나프타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수 있어서다. 이에 중소 규모의 석유화학 기업들은 생산 규모를 줄이거나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초 세웠던 사업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번 원유 가격 급등은 전쟁과 제재 등 지정학적인 이유로 발생한 것이어서 영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유가 상승은 항공사에도 치명적이다. 지난해 3분기(7∼9월) 보고서 공시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연간 3000만 배럴의 유류를 항공기 급유 등에 사용한다. 유가가 10달러 오르면 약 3억 달러(약 3700억 원)의 추가 부담을 지게 되는 셈이다. 항공사의 유류비는 연간 지출의 30%가량을 차지하는 만큼 유가 상승은 큰 부담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들은 일정 유류량에 대해 이른바 ‘헤징’(위험 회피)을 하면서 유가 변동에 대응하고 있지만 그 규모가 30% 정도에 불과하다”며 “나머지는 고스란히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반도체, 전자, 배터리 등 ‘원료 수입, 제품 수출’의 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 핵심 산업들도 비용 부담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해운 운임은 미리 장기 계약을 맺어 유가가 올라도 즉시 부담은 작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늘어난 항공운임은 비용이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편”이라며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유가 상승세가 장기화될 경우 정유사들도 대체 수급처 마련과 수익성 확보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단기적으로 유가 상승은 정유사의 재고 이익 상승 등의 효과가 있긴 하다. 하지만 예상 범위 내 상승 추세를 넘는 급격한 가격 변동은 정제 마진 하락 등으로 이어져 수익성이 나빠진다. 또 유가 급등에 따라 석유제품 전반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 궁극적으로는 정유사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원유뿐 아니라 러시아 수입 비중이 큰 유연탄, 철근 등 원자재 가격 급등도 건설업체 등 기업들에는 걱정거리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유연탄의 국제 시세가 이달 4일을 기준으로 t당 232달러로 최근 일주일 새 16% 올랐다. 유연탄은 시멘트의 주재료다. 국내 시멘트 업체들은 유연탄의 75%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시멘트 가격 급등으로 레미콘 가격 인상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건설 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는 철근 값도 불안하다. 철근의 원재료인 국제 고철스크랩 가격도 13년 만에 처음으로 t당 60만 원을 넘어섰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주요 원자재 수급이 불안해지며 가격도 오르고 있다”며 “올해 착공에 들어갈 현장 대부분이 손해가 막심하다”고 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미국#에너지 제재#유가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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