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일상 속으로 들어온 ‘로봇과의 공존’
순찰로봇이 공원서 소독하고, 바리스타 로봇이 커피 내려
군사용 정찰로봇 개발도 본격화… 무인점포-공장 늘며 수요 급증세
일부선 “일자리 뺏긴다” 볼멘소리… “새 일자리 만들어” 반론도 많아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새로운 직원이 생겼다. 구석구석을 혼자 돌아다니며 소독약을 뿌리고 순찰을 하는 로봇 ‘패트로버’다. 혼자 사는 이들에겐 반려봇이, 식당에선 셰프봇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인간은 로봇과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로봇과 공존하는 시대
3일 오후 2시 서울 광진구 서울어린이대공원. 따뜻한 봄 날씨를 맞아 나들이 나온 시민들로 북적일 때 연노란색 물체가 정문 안으로 들어섰다. 어린이 탑승용 장난감 자동차 크기만 한 물체는 바퀴 네 개로 스스로 움직였다. 내부에 카메라를 갖춘 채 공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일정 시간마다 물체 뒷면의 작은 구멍에선 소독약이 뿜어져 나왔다.
한 아이가 “로봇이다”라고 외치며 달려왔다. 물체는 아이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스스로 멈췄다. 기자가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측면에 ‘자율주행 순찰로봇’이라고 적혀 있었다. 로봇은 순찰 및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업무를 맡은 공원 직원인 셈이다.
로봇의 이름은 ‘패트로버(Patrover)’. 현행법상 로봇은 차량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도나 공원에서 운행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공원은 서울시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 지역으로 승인받아 패트로버가 돌아다닐 수 있었다.
로봇이 점점 우리 일상 속 깊이 파고들고 있다. 로봇 청소기로 집을 청소하고 인공지능(AI) 비서에게 하루 일정을 묻던 수준을 넘어섰다. 홀로 사는 이들에게 ‘반려봇’이 동반자가 되고 식당에선 ‘셰프봇’ ‘바리스타봇’이 늘고 있다.
○ ‘반려봇’ ‘바리스타봇’ 등이 일상 속으로
로봇은 크게 제조업용 로봇과 서비스용 로봇으로 나뉜다. 기존에는 생산 현장에서 사용되는 산업용 로봇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소비자들의 일상과 함께하는 서비스용 로봇이 급성장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서비스용 로봇의 세계 시장 규모는 가정용(43억 달러), 의료용(36억 달러), 물류용(10억 달러) 등의 순으로 크다. 2020년 기준 의료 로봇(174%), 청소 로봇(95%), 물류 로봇(33%) 등이 전년 대비 크게 증가했다.
가정용 로봇으로는 반려봇이 주목받고 있다. 반려봇 ‘효돌’은 어르신들의 투약 시간에 맞춰 “할아버지 약 드실 시간이에요”라고 말해준다. 정해진 하루 일정을 어르신이 잊지 않게 안내한다.
노인들은 외로운 일상 속에 반려봇과 교감을 느끼기도 한다. 학계에선 특히 치매환자들이 로봇에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고 로봇을 반려동물처럼 소중히 여긴다고 설명한다. 반려봇이 일찍이 확산된 일본에선 로봇 수리가 불가능해지면 로봇 주인이 ‘로봇 장례식’을 치러주는 문화가 생기기도 했다.
도심에선 로봇이 단순한 서빙 외에 직접 요리를 하는 카페나 레스토랑을 볼 수 있다. 서비스 로봇 스타트업 ‘라운지랩’이 문을 연 카페 ‘라운지엑스’에선 ‘바리스타 로봇’이 커피를 내린다. 아이스크림, 초콜릿을 담당하는 로봇도 있다.
일상뿐만 아니라 전쟁 등 특수 상황에서도 로봇이 쏠쏠한 역할을 한다. 사람을 투입하기 위험하고 난해한 작전에 로봇이 투입된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는 기업들과 함께 2027년까지 개미나 벌을 닮은 ‘초소형 곤충형 정찰 로봇’을 국내 기술로 본격 개발한다. 288억1000만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곤충 로봇들이 무리를 지어 목표물을 공격하는 군집 방식도 구현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로봇의 등장과 함께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에 따르면 세계 로봇시장은 2017년 245억 달러에서 2020년 444억 달러로 큰 것으로 추산된다. 3년 만에 81.2% 성장한 셈이다. 로봇시장은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020년부터 연평균 32%씩 성장해 2025년에는 1772억 달러까지 클 것으로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로봇산업이 자동차와 스마트폰 산업을 합친 규모보다 커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패트로버를 제작한 도구공간의 김진효 대표(38)는 “패트로버가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은 일을 대신 해주고 있다”며 “‘1인 1스마트폰’이 보편화됐듯 앞으로 ‘1인 1로봇’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 “로봇이 일자리 뺏는다” vs “새 일자리 만든다”
최근 로봇산업은 주요 선진국의 뿌리 깊은 저출산, 고령화 때문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인구가 부족해지니 로봇이 일을 대신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생활이 확산한 점도 한몫했다. 사람들의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인점포와 무인공장 등이 늘면서 로봇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미래 먹거리로 로봇산업을 점찍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미국의 유명 로봇 제조사였던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약 1조 원에 인수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도 2020년 향후 3년간 로봇과 AI 등 미래 기술산업에 24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서비스용 로봇 시장에선 높은 가격대가 대중화의 장애물로 꼽힌다. 진화된 기술이 적용될수록 생산비가 높아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아마존의 가정용 로봇 ‘아스트로’는 ‘부자 장난감’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스트로 판매가는 1000달러(약 122만 원)부터 시작된다.
로봇 사용의 공감대도 형성될 필요가 있다.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는 경쟁자란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학계에선 로봇과 일자리의 상관관계를 두고 논쟁이 팽팽하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내놓은 ‘로봇이 노동수요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 1000명당 로봇 1대가 늘어난 지역에선 제조업 구인 인원 증가율이 2.9%포인트 감소했다. 김혜진 한은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로봇과 노동의 대체성은 로봇기술이 발전할수록 강화될 것”이라며 “직업훈련 확대, 재교육 등 근로자 업무처리 능력을 높여 노동생산성이 제고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로봇이 일자리를 늘린다는 반론도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위험한 산불 현장에 로봇이 투입되면 화재 로봇 서비스업이라는 기존에 없던 일자리가 무궁무진 생겨난다”며 “단순 업무는 로봇에 맡기는 대신 생산성이 높은 일에 인력을 집중하고, 이렇게 생산성을 높인 회사는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할 여유까지 생긴다”고 분석했다.
○ “로봇과 인간 공존 방안 마련해야”
이날 공원에서 패트로버를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한지현 씨(22·여)는 “로봇이 더 꼼꼼히 위험물을 관찰하고 사각지대를 돌아다녀 인간의 취약점을 보완하니 안심이 된다”며 “위험한 사람이 공원에 나타났을 때 사람은 겁을 먹을 수 있어도 로봇은 그렇지 않으니 위기 대처 능력도 빠를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사생활 침해나 일자리 감소 등을 우려한 시민도 있었다. 대학생 임태희 씨(24·여)는 “로봇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촬영할 수 있고, 최근 아파트 월패드 해킹 논란처럼 해킹이 될 경우 사생활 침해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근처에 사는 주민 남현숙 씨(65·여)는 “은퇴한 노인분들이 경비원 일을 많이 하는데 이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어 걱정된다”고 했다.
몸집이 커진 로봇시장에 걸맞게 제도도 발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0년 AI 윤리기준을 내놨지만 로봇의 경우 2007년 윤리헌장 초안이 도출된 후 큰 논의가 없다.
한재권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로봇공학과 교수는 “로봇의 권리 수준을 반려동물에 준하는 수준으로 정할지, 로봇으로 부가가치가 생기면 세금은 어떻게 부과할지 등 큰 틀을 정하는 사회적 숙고 과정이 마련돼야 세부 규정도 만들 수 있다”며 “유럽연합(EU)이 2017년 ‘로봇시민법 결의안’을 채택해 관련 논의를 이어가듯 한국도 본격적인 논의의 장을 열 때”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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