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매입 등 의사결정 신속한 부동산 ‘블라인드펀드’ 참여하고
아예 자산운용사에 직접 출자해… 시공권-개발이익 ‘두 토끼’ 노려
중견사는 주택재정비 등 눈 돌려
국내 시공능력 10위권인 대형 건설사 A사는 최근 한 자산운용사가 만든 펀드에 100억 원을 투자했다. 1000억 원 규모의 블라인드펀드(투자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자금을 모집하는 펀드)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된다.
아직 인허가도 나지 않은 초기 단계 사업이라 A사 자체 자금이라면 내부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해서 투자가 사실상 힘들다. 하지만 블라인드펀드라는 ‘우회로’를 통해 토지 매매 계약금이나 사업비 등을 바로 댈 수 있게 됐다. A사는 향후 사업이 본격화하면 시공 계약을 맺어 매출을 올리고, 사업이 끝나면 펀드 투자 지분에 따른 개발 이익까지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공사로서의 매출과 시행사로서의 수익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 단순 도급에서 벗어나려는 대형 건설사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주택 사업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단순 도급’에서 벗어나 ‘디벨로퍼(부동산개발업체)’로 변신하고 있다. 과거에는 안정된 수익을 올렸다면 현재는 리스크를 더 지는 대신 더 많은 수익을 얻어 가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대형 건설사 B사는 지난해 직원들을 2주 동안 시행사에 파견 보냈다. 단순 도급 형태 주택 사업에서 수익률이 내리막길을 걷자 내린 결단이다. 복귀한 직원들은 “알짜배기 토지를 매입할 때 필요한 의사결정 기간이 시행사와 비교해 너무 길어서 단순 도급만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했다. B사는 회장 직속으로 부동산 개발사업에 필요한 토지를 매입하는 별도 부서를 신설했다.
이처럼 대형 건설사가 시행사업에 뛰어드는 데는 수익성을 개선하려는 목적이 크다. 단순 도급 사업은 통상 이익률이 5%를 넘지 않는다. 사업도 경기나 정책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도급 사업만으로는 기업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크다”고 말했다.
○ 펀드에 투자하고 자산운용사 출자해 시행
그동안 대형 건설사는 토지 매입에 필요한 의사결정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약점 때문에 시행사업에서 경쟁력이 약했다. 대형 건설사가 토지 매입 자금을 조달하려면 최소 두 달 이상이 걸리는 사내 투자심의를 거쳐야 한다. 반면 시행사는 대표나 임원이 직접 토지 매입을 결정해 의사결정 기간이 길어야 한 달 걸린다. 대형 건설사와 시행사가 토지 매입 경쟁을 하면 대부분 시행사가 이겼다. 건설사가 블라인드펀드로 투자하는 방식은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인 셈이다. A사는 블라인드펀드 투자를 결정하며 투자심의를 따로 거치지 않았다. 자금 규모가 비교적 크지 않고 펀드가 목표 수익률도 제시해주기 때문에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했던 것이다.
롯데건설과 대우건설, GS건설 등은 자산운용사와 업무협약을 맺거나 아예 투자 전문 자산운용사에 출자하고 있다. 건설사는 사업 구상과 설계·시공 등을 담당하고, 자산운용사는 투자자 모집, 자금 조달 등을 담당하는 구조다. 시행에 따른 수익도 거두되, 투자 결정에 시간이 걸리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다.
대형 건설사들이 이처럼 시행에 눈 돌리는 사이 상대적으로 시행사업에 강했던 중견 건설사들은 대형 건설사의 주요 무대이던 주택 정비사업 수주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신동아건설은 파밀리에 브랜드 디자인을 개선했고, 한양 역시 수자인 브랜드를 리뉴얼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입주 30년이 지난 1기 신도시의 재정비가 다가온 만큼 미리 브랜드를 알려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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