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시대 / 새 대통령에 바란다]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눈앞 이익보다 가치에 역점둔 벤처…‘20세기 규제’로 혁신 꽁꽁 묶어놔
네거티브 규제로 최소한만 규제해야…유니콘 키울 ‘모험 자본’도 육성을
‘마켓컬리’를 창업한 지 만 7년이 지났다. 처음 창업에 발 디뎠을 때는 꿈도 꾸지 못하던 곳까지 참 멀리도 왔다. 세계 최초로 새벽배송 서비스를 선보이고, 1000만 고객의 마음을 얻고, 중소 협력사를 발굴하고, 고용을 창출하고….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고객이 전날 주문해 놓은 가장 신선한 식재료와 질 좋은 상품을 아침에 문 앞에서 받아볼 수 있게 한다’는 목표에 집중함으로써 어느새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이라는 감사한 이름을 얻게 됐다.
그런데 더 큰 비전과 시장을 향해 나아가려 할수록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걸림돌들 때문에 혁신의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상당수는 정부와 민간이 손잡고 해법을 함께 찾을 수 있는 문제들이다. 관행, 내부규정, 세칙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들, 이른바 ‘거미줄 규제’다.
규제 문제는 우리나라 창업자들에게 절박한 이슈다. 정보기술(IT) 전문 로펌 테크앤로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세계 100대 스타트업(2018년 기준) 중 절반이 넘는 57개가 한국에서는 작동이 어려운 사업 모델이다. 투자 유치나 인수합병(M&A), 주식시장 상장 등 기업 성장의 다음 단계에 도전할 때에도 각종 규제는 촘촘하게 작동한다. 이 문제 해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을 맡기도 했다. 사회 각 주체가 젊은 창업자들을 같은 테이블에 앉아 협상할 수 있는 파트너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랐지만, 아직은 갈 길이 남은 듯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규제 개혁을 통한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줄기차게 추진해 왔음에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는 ‘기업’과 ‘기업활동’에 대한 관점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최근 10년 사이 창업한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은 전통기업들과 성장 공식 자체가 다르다. 도전적 사업 모델과 남다른 기술력으로 국내외 투자를 받아 확장성 있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한다.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하며, 당장의 영업이익보다는 얼마나 큰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고객 가치를 창출하느냐를 중요하게 보고 여기에 집중한다. 반면 이들을 둘러싼 규제 환경은 여전히 ‘20세기적 경험’에 갇혀 있는 측면이 있다.
내 돈이 없으면 (투자가 아닌) 빚을 내서 사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오너의 리더십’에 의존하는, 작고 제한된 시장에서 먹고 먹히는 경쟁을 하던 시절의 감(感)이다. 마치 발육 좋은 아이에게 두세 치수 작은 옷을 억지로 입혀 놓은 꼴이랄까. 이렇다 보니 아무리 선진적인 창업 진흥 정책을 내놔도 결국 법과 규정, 규정과 관행, 관행과 암묵지 사이에 이런저런 부조화가 발생하며 기대만큼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다. 상황이 이런 만큼, 창업자들 중 한 사람으로서 규제 개혁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을 조심스레 보태 본다.
첫째, 산업 전반에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길 바란다.
포지티브 규제가 ‘정부가 허락한 것 말고는 다 해선 안 된다’는 뜻이라면, 네거티브 규제는 ‘안 된다는 것 빼고는 다 해도 된다’는 접근이다. 아무리 규제를 촘촘하게 만들어 놔도 모든 문제를 틀어막을 수는 없다. 또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세상에서 “규정(규제)이 만들어질 때까지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도전정신 발현에 큰 걸림돌이 된다.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채택한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최소한의 규제를 하다 보니 새 시도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낮다. 뭔가를 시도한다 해서 처벌을 받을 거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 대신 문제가 터지면 크게 책임을 진다.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 놓고 ‘규정대로 했다’는 식으로 빠져나가기가 힘들다. 영향력이 클수록 처벌이 가중됨은 물론이다.
둘째, 자본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벤처캐피털과 같은 모험자본이 확대 공급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았으면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유니콘 스타트업이 여럿 탄생했다. 비결은 수백억, 수천억 원 단위의 해외투자 유치다. 사업을 조(兆) 단위로 키우려면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민간 벤처캐피털의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내 모험자금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다. 더구나 데카콘 기업(기업 가치 10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의 탄생을 기대한다면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 회수시장이 아직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투자 회수 방법인 주식시장의 경우만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대기업이 상당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또는 관계회사의 상장 프로세스에 더 익숙하다. 자체 자금을 통해 신사업을 추진하고, 그것이 성공할 경우 상장해 일부 지분을 매각함으로써 수익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제 산업 구조와 기업 성장의 공식이 크게 달라진 만큼, 관련 규정 및 규제 또한 변화의 시기를 맞은 듯하다. 그래야만 성공적 해외자금 유치로 폭발적 성장을 이룬 스타트업들이 우리 자본시장 안에서 더 큰 혁신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유니콘, 나아가 데카콘을 향하여 숨차게 달려가는 스타트업들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규제 개혁을 통해 국내 스타트업들이 해외 경쟁자들과 ‘공평한 경쟁의 장(level playing field)’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마 창업 생태계가 정부에 가장 바라는 점은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약력
△부산(39) △미국 웰즐리대 정치학과 △골드만삭스 홍콩지사 △맥킨지앤드컴퍼니 홍콩지사 △싱가포르 국영 테마섹홀딩스 △베인앤드컴퍼니 한국지사 △컬리 창업자 겸 대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공동의장 △중소벤처기업부 컴업조직위원회 민간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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