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단지 놓고 홍삼즙 만들던 가게, 삼성전자 도움에 아마존 진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일 03시 00분


[모두를 위한 성장 ‘넷 포지티브’]
2부 | 기업, 함께하는 성장으로〈1〉 스마트공장 지원하는 삼성

충남 금산군의 홍삼 제조업체 ‘홍만집’의 길미자 대표(왼쪽)가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지원센터 직원과 다른 근로자와 함께 수삼에 구멍을
 뚫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이 일일이 구멍을 뚫던 작업이었는데 삼성전자 측 지원으로 도입한 기계 덕분에 일이 훨씬 빠르고 
수월해졌다. 금산=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충남 금산군의 홍삼 제조업체 ‘홍만집’의 길미자 대표(왼쪽)가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지원센터 직원과 다른 근로자와 함께 수삼에 구멍을 뚫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이 일일이 구멍을 뚫던 작업이었는데 삼성전자 측 지원으로 도입한 기계 덕분에 일이 훨씬 빠르고 수월해졌다. 금산=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국내 기업 현장에서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성장을 꾀하는 ‘넷 포지티브’ 사례가 확산하고 있다. 주주, 임직원, 소비자, 협력업체는 물론이고 환경과 사회문제 해결을 통해 미래 세대에도 기여한다. 성장을 하되 기업 생태계가 함께 크고, 맹목적 이윤 추구 대신 삶과 미래의 개선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내 기업들의 전략적 투자와 혁신 활동 사례를 시리즈로 전달한다.》


“구멍가게 구석에 솥단지 하나 놓고 홍삼즙 만들던 저희가 이젠 미국 아마존에서 홍삼 상품을 팔게 됐어요. 삼성전자 직원들이 자기 일처럼 도와주지 않았다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지난달 29일 충남 금산군 금산읍의 홍삼 제작·판매 업체 홍만집. 공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홍삼을 찌는 달짝지근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콧속으로 확 들어왔다. 공장 한쪽에선 깨끗하게 씻은 수삼을 찌고 말리는 과정이 한창이었다. 잘 쪄진 홍삼에 꿀이 잘 스며들도록 자동으로 수십 개의 구멍을 뚫는 기계도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종업원들은 흰색 위생복과 위생모자, 파란색 위생신발을 신은 채 수삼을 나르거나 자동으로 포장돼 나온 홍삼액 상품을 옮기며 바삐 움직였다. 자동화된 공장을 둘러보던 길미자 대표(60)는 “가내수공업이 삼성전자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까지 발전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국내 대기업에 대한 인식이 아예 바뀌었다”고 말했다.

○ 삼성 공장 견학 이후 바뀐 4대째 인삼 가업


길 대표는 인삼농가 홍만집의 3대 승계자다. 역시 금산에서 3대째 인삼 농사를 짓던 김도원 씨(63)와 1985년 결혼한 뒤에도 인삼은 생계 수단이었다. 인삼 농사를 지어 시장에 가져다 파는 일상이 6년간 이어졌다. 하지만 인삼 가격이 나날이 떨어지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인삼 자체를 상품화해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됐다. 사업의 경험이나 상품화 기술이 전무했던 부부는 무작정 건조기와 솥단지부터 샀다. 이전부터 운영하던 작은 슈퍼 구석에 솥단지를 놓고 홍삼즙을 만든 게 사업의 시작이었다. 동네 주민들에게나 팔 심산이었다.

2011년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개발사업 지원으로 사업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걱정만 커졌다. 평생 농사만 짓던 부부에게 2t 규모의 기계 유지·보수, 직원 관리, 판로 개척 어느 것 하나 익숙한 게 없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2017년 9월 길 대표는 서울에서 경영대학원을 다니던 첫째 딸 김한나 실장(37)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 우리 힘으론 도저히 사업 못 하겠어. 미안한데 네가 금산에 내려와 주면 안 되겠니?”

김 실장은 2019년 초 그렇게 4대째 가업 승계자가 됐다. ‘젊은 피’가 수혈됐다고 곧바로 사업이 번창하는 건 아니었다. 김 실장으로서도 경영 공부와 실제로 사업을 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란 걸 절감했다. 모녀는 그해 금산 소상공인 자격으로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현장 견학의 기회를 얻었다. 김 실장은 “우리처럼 작은 곳이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 현장을 보는 게 무슨 도움이 되나 싶었다. 하지만 직접 공장을 가보고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가장 놀란 점은 공장 곳곳에 놓인 ‘나사 보관함’이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국내 최고 수준의 기업이 작은 나사 재고 하나까지 허투루 쓰지 않는 것을 본 거다. 김 실장은 홍만집으로 돌아와 공장 곳곳에 ‘사용 후 제자리’ 표어부터 만들어 붙였다.

이후 삼성전자와 중소벤처기업부가 함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사업을 한다는 공지를 접했다. 이 사업은 삼성전자가 제조기술과 경험을 활용해 어려운 중소 제조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길을 찾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사업이다. 중소 제조기업들이 함께 성장해야 삼성전자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배경이 됐다.

김 실장은 망설임 없이 신청서를 넣었다. 삼성전자는 약 200명의 구성원을 갖춘 스마트공장지원센터를 통해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5∼2021년 총 2819개 회사를 지원했는데 홍만집도 그중 하나인 셈이다.

○ 공장 대표보다 삼성 직원이 한 시간 먼저 출근


삼성전자의 스마트공장지원팀은 홍만집을 구석구석 둘러본 뒤 창고와 재고 정리부터 시작했다. 당장 쓸 물건과 쓰지 않을 물건, 자주 쓰는 물건과 사용 빈도가 낮은 물건을 구분했다. 공정 속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이었다. 박준하 삼성스마트공장운영팀장은 “생산성을 높이려면 설비를 자동화하고 시스템을 자동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장이 돌아가는 걸 전 사원이 한눈에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삼성 직원 3명은 금산 인근에 모텔을 잡고 2개월 가까이 매일 출퇴근하며 공장 정비를 도왔다. 길 대표의 출근시간은 오전 8시 30분이지만 삼성 직원들은 오전 7시 30분에 나와 일했다. 우선 수삼에 구멍을 내는 기계를 도입했다. 작업자 여러 명이 포크를 들고 일일이 구멍을 내던 고된 일이었다. 잔고장이 많던 홍삼 진액 포장기도 개조했다. 삼성 본사에서도 기계 설비 전문가가 다녀가곤 해 홍만집의 스마트공장을 만드는 데 기여한 삼성 직원은 20명에 이른다.

홍만집은 올해 5월까지 스마트공장 지원을 받는다. 지원을 받기 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종업원은 4명에서 8명으로 늘었다. 매출액도 4억3000만 원에서 8억7000만 원으로 두 배로 뛰었다. 이달부터는 아마존에서도 판매를 시작한다. 길 대표는 모든 게 삼성전자의 덕이라며 고마움을 감추지 않았다.

“직원들이 도와주는 게 고마워 홍삼 한 뿌리 선물하려 해도 한사코 거부해요. 그래서 지난해 말 겨우 손 편지 한 장 써서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삼성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더 열심히 해볼게요.”



#기업#함께하는 성장으로#스마트공장#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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