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0년 만에 4%를 넘어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것이 물가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물가 상승세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며 다음 달부터 유류세 인하 폭을 3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5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1% 올랐다.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에 가장 높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4∼9월 2%대를 유지해 오다 지난해 10월(3.2%)부터 3%대로 올랐다.
4% 물가 상승은 석유류 등 공업제품과 외식 등 개인 서비스가 견인했다. 특히 석유류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31.2% 급등했다. 휘발유(27.4%), 경유(37.9%)가 모두 크게 올랐다. 석유류의 3월 물가 기여도(1.32%포인트)는 전달(0.79%포인트)보다 0.53%포인트 늘었다. 지난달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며 국내 에너지 가격이 올라 공업제품 등 물가 전반에 연쇄 반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개인 서비스 품목은 4.4% 증가했다. 이 가운데 외식 물가는 39개 품목이 모두 올라 총 6.6% 높아졌다. 1998년 4월(7.0%) 이후 가장 크게 올랐다. 소비 회복세와 함께 원재료비, 배달료 등이 가격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고물가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달부터 전기·도시가스 요금도 오르면서 서민 가계 부담이 커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다음 달부터 7월까지 현재 유류세 인하 폭 20%를 30%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유가 31% 뛰자 도미노 물가상승… 화물차-버스 3개월 경유보조금
3월 물가 10년만에 4%대 상승 가공식품-외식 6%대, 집세 2%…생활물가지수 1년새 5%나 올라 한은 “당분간 4%대 상승률 유지”…일각 “물가 잡을 대책 사실상 없어”
“글로벌 전개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당분간 물가 압력이 지속될 수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물가 안정을 최우선 국정과제 중 하나로 삼았던 정부가 10년 만에 4%대로 치솟은 3월 물가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폭 확대와 유가 보조금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대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전 세계에 불어닥친 고물가 현상을 국내 대책으로 잡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유가 치솟으며 줄줄이 가격 급등
5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물가지수를 구성하는 458개 품목 중 351개 품목이 지난해 대비 모두 올랐다. 4개 품목 중 3개 품목이 1년 새 가격이 오른 셈이다.
전체 물가를 끌어올린 건 기름값이다. 석유류 가격 인상률은 3월 31.2%로 2월 상승 폭인 19.4%보다 더 가팔라졌다. 그 결과 석유류 물가에 영향을 받는 공업제품 등 나머지 물가가 연쇄적으로 올랐다. 석유류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1월 35.5% 이후 4개월 만에 다시 30%대로 올라섰다.
서민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가공식품도 6.4% 올라 2012년 4월(6.5%) 이후 최대로 올랐다. 가공식품과 석유류로 구성된 공업제품 물가가 6.9% 뛰면서 2008년 10월(9.1%) 이후 최대 폭으로 인상됐다. 외식(6.6%)과 집세(2.0%) 관련 물가도 연쇄적으로 뛰면서 장바구니 물가로 인식되는 생활물가지수는 지난해 대비 5.0%나 올랐다. 서민들의 물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석유류와 가공식품 등 공업제품과 외식 등 개인 서비스 가격이 오름세를 지속했다”며 “이달 상승 폭 확대는 대부분 석유류 가격 오름세 확대에 기인한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이날 물가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4%대를 유지하고 올해 연간 상승률은 한은의 기존 전망치인 3.1%를 크게 웃돌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지난해 말 예견한 올해 물가상승률은 2.2%였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4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진화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유류세 인하 폭 확대, 유가 연동 보조금 지급
정부는 물가 안정화 차원에서 5월부터 7월까지 유류세 인하 폭을 기존 20%에서 30%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연료소비효율이 L당 10km를 가는 차가 하루 40km를 주행하면 유류세 20% 인하 때보다 1만 원 정도 절감된다.
이와 함께 경유 가격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영업용 화물차, 버스, 연안 화물선 등에 대해 유가 연동 보조금을 5월부터 3개월간 한시적으로 지급한다. L당 1850원의 기준 가격 이상으로 오른 유가의 절반을 정부가 지원한다. 한도는 L당 183.21원이다. 같은 기간 차량용 부탄(LPG)에 대한 판매 부과금 역시 30%(L당 12원) 감면한다.
다만, 정부 대책은 고유가에 직격탄을 맞는 일부 계층에 한정된 것으로 전반적인 물가 안정화 대책으로 보기에는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고물가를 잡을 대책은 현재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다만, 수입가격을 내리는 차원에서 환율 안정화 정책을 병행해 물가를 일정 수준 잡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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