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강남구의 대표적 재건축 단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내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지금 당장 안 팔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집주인들이 많아지면서 한 달 새 호가가 2억원 넘게 올랐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 매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며 “워낙 매물이 없다 보니 실제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서울 강남 집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부동산 규제 완화 기대감이 커지면서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불안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매수심리가 살아나고, 일부 재건축 단지에서는 신고가를 경신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집값 상승의 근원지로 꼽혔던 강남권 집값이 꿈틀거리자, 규제 완화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건축 규제 완화로 인한 강남권 집값 상승세가 주변 지역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권 집값 상승의 풍선효과로 서울 전체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이른바 ‘키 맞추기’ 장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1일 정부과천청사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의 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지나친 규제 완화는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로 악용될 수 있다”며 “잘못된 가격 신호로 갈 수 있는 규제 완화나 공급은 윤석열 정부의 미래 청사진에는 없다”고 강조했다.
인수위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재건축 규제 완화 공약 중 하나인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부담금 완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인수위는 부담금 면제기준을 3000만원 이하에서 1억원 이상으로 올리고 이익 구간별로 10~50%에 달하는 부과율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일각에선 부과 방식 자체를 전면 수정하고, 부담금 부과 시점을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일에서 조합설립인가일로 조정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과 수도권에 대규모로 주택을 공급할 부지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재건축 조합원의 부담을 낮춰 재건축 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강남권 집값이 상승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4월 첫째 주(4일 기준) 서울 매매가격은 지난주 0.01% 하락에서 이번주 0.00%로 보합 전환했다. 서울 아파트값이 하락을 멈춘 것은 지난 1월 넷째 주(24일 기준) 하락 반전 이후 11주 만이다.
강남구(0.02%)와 서초구(0.02%)는 각각 중대형과 신축 위주로 신고가가 거래되며 0.01% 상승한 지난주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송파구(0.01%)도 급매물이 소진되며 상승 전환했고, 강동구(0.00%) 등도 재건축 위주로 매수문의가 늘며 보합세를 나타냈다.
특히 재건축 안전진단과 재초환, 분양가 상한제 등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에 일부 재건축 단지에서는 신고가 경신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 개포우성1차(전용면적 158.54㎡)는 지난달 19일 51억원에 거래됐다. 지난 2019년 10월 34억5000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16억5000만원이 올랐다. 또 지난 2월 25억5000만원에 거래된 대치동 은마아파트(전용면적 84㎡)의 경우 현재 호가가 27~28억원 선이다.
매매수급지수도 껑충 뛰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4월 첫째 주(지난 4일 기준) 서울 동남권(강남4구)의 매매수급지수는 96.0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2월13일 조사(96.5) 이후 16주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대선을 기점으로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5주 연속 지수가 상승해 매수자와 매도자가 비슷한 수준까지 상승했다. 이 지수가 기준인 100 이하면 공급이, 이상이면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재건축 규제 완화와 시장 안정을 위한 방안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관련 규제를 한꺼번에 풀면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부동산 정책의 급격한 변화로 집값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규제 완화에 대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규제 완화에 따른 집값 상승 등 부작용을 최소하기 위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하거나,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금지 시점을 앞당기는 등 안정화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주택 공급 정책을 우선 내놓고, 시장이 안정되면 점진적 규제 완화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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