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포스코의 ‘국민기업’ 논쟁[기자의 눈/변종국]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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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국·산업1부
변종국·산업1부
포스코는 최근 전 임직원에게 ‘포스코그룹 정체성’이라는 설명 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에는 “포스코가 국민기업이라는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미래 발전을 위해 극복돼야 할 프레임”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포스코는 “민영화가 완료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국민기업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회사 정체성을 왜곡하고, 다른 민간기업 대비 과도한 책임과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고 적었다. “외부의 왜곡된 주장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설명 자료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자료에서 국민기업이 아닌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다. 공기업에서 출발했으나 정부 지분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17개 상장사 중 포스코만 국민기업이라는 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일청구권 자금이 사용됐으므로 국민기업’이라는 시각도 반박했다. 대일청구권 자금은 포항제철소 1, 2기 건설비의 3%에 해당(유상 포함 시 12%)되며, 이 또한 원금과 이자의 상환을 1996년 모두 완료했다고 했다.

포스코가 이런 자료를 만든 것은 철강을 넘어 친환경 종합 소재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은데 국민기업이란 프레임이 발목을 잡는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포스코는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고 본사를 포항에서 서울로 이전하려는 과정에서 지역 정치권의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반대 여론엔 국민기업으로서 처음 뿌리 내린 지역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 국민기업이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개념이다. 그럼에도 포스코가 이른바 국민기업이라는 이유로 각종 정치적 외풍을 받아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포스코는 불과 3년 전인 2019년 ‘포스코 50년사’를 발간하면서는 ‘국민기업’이라는 논리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민영화 과정에 대해 “1988년 6월 10일 국민주 1호로 공개되며 명실상부한 국민기업으로 재탄생했다”고 적었다. 1994년 이동통신 사업권을 딴 과정에 대해선 “국민기업을 신뢰하고 지지한 국민여론”을 배경으로 꼽았고, 기업 미래 비전에 대해선 “민족자본으로 창업한 태생적 국민기업으로서 국민 기대와 요구를 존중해 공익에 부합하는 경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기업이라는 이름이 자유로운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렇다고 자신이 의미 부여해 온 역사를 부정하는 모습 또한 씁쓸해 보인다.

#포스코#국민기업#포스코그룹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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