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강도 통화긴축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치솟는 물가를 잡으려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밟으면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를 비롯한 세계 증시가 휘청거리고 있다.
연준이 6, 7월 연이은 ‘빅스텝’을 예고한 데다 다음 달부터 보유 채권을 파는 양적 긴축(QT·대차대조표 축소)에도 나설 예정이라 금융시장 불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 등 신흥국에서 자본 유출이 더욱 가팔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빅테크 버블’ 빠지나
6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23% 떨어지며 나흘째 하락했다. 빅스텝 이후 투자심리가 위축된 외국인과 기관의 ‘쌍끌이 매도’에 지수가 떨어졌다. 이날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4863억 원, 3001억 원어치 주식을 내다팔았다. 개인은 7644억 원 순매수하며 외국인과 기관이 던진 매물을 받아냈지만 지수 하락을 방어하지 못했다.
성장주와 기술주의 낙폭이 컸다. 네이버(―3.55%)와 삼성바이오로직스(―2.58%), 카카오(―5.28%), 카카오뱅크(―3.26%), 카카오페이(―8.17%) 등이 일제히 하락했다. 네이버와 카카오페이는 장중 52주 신저가로 내려앉았다. 카카오페이는 연초 대비 43.95% 폭락하며 상장 후 최저가로 추락했다.
이는 연준의 빅스텝 후 뉴욕 증시가 하루 만에 급락했기 때문이다. 4일(현지 시간) 각각 3.19%, 2.81% 올랐던 나스닥지수와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5일 각각 4.99%, 3.12% 떨어지며 상승 폭 이상을 반납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2020년 6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이 예정된 이벤트라서 잠시 안도했지만 심각한 인플레이션 상황을 다시 자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연준이 두어 차례 빅스텝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이날 부각되며 미국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장중 연 3.10%까지 올랐다. 국고채 금리가 오르면 성장주, 기술주들의 미래 수익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고 조달 비용이 높아져 투자 심리가 약해진다.
비트코인 가격도 급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미 동부 시간 기준 5일 오후 5시 전날 대비 8.4% 떨어진 3만6431달러(약 4636만 원)에 거래됐다. 이더리움도 6.4% 하락해 2754.37달러(약 350만 원)에 거래됐다.
○ 외국인 주식 비중,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신흥국에서 외국인 자본의 이탈도 두드러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올해 1∼4월 외국인이 한국, 대만 등 아시아 주요 증시에서 순매도한 금액은 457억6000만 달러(약 58조2000억 원)로, 동기 기준으로 2008년 이후 최대치였다. 외국인은 지난달에만 아시아 주식 142억2000만 달러어치를 팔았는데, 약 35%(49억7000만 달러)가 한국 주식이었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3월 이후 10조 원 넘게 순매도했다.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외국인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달 28일 30.9%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8월 이후 최저치였다.
문제는 외국인 ‘엑소더스(대탈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면 달러 강세가 강화되며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더 이탈하기 쉽다. 외국인들이 원화를 팔고 떠나면 원화 가치가 더 하락해 환율 상승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 증시는 물가 상승과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 가능성으로 취약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며 “연준의 빅스텝이 이어지면 외국인 자본 유출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열린 거시경제금융 점검회의에서 “당분간 한국 금융·외환시장이 대내외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할 우려가 크다”며 “필요할 경우 과감하고 신속하게 시장 안정 조치를 가동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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