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운전자 양모씨(43·남)의 하소연이다. 그는 국내 일부 주유소에서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싸게 팔리는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내 러시아산 경유 수입이 줄면서 국제 경유 가격이 치솟자 화물차와 고속버스 등 우리나라 경유차 운전자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7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5월 첫째 주 전국 주유소의 경유 판매 가격은 리터당 평균 1906.9원을 기록하며 휘발유 판매 가격인 리터당 평균 1940.7원과 간격을 더욱 좁혔다.
국내 휘발유 가격은 경유보다 리터당 200원가량 더 비싼 것이 일반적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내 러시아산 수입 물량이 줄면서 국제 경유 가격이 치솟았다. 더구나 정부가 이달부터 유류세 인하폭을 20%에서 30%로 확대하면서 휘발유의 세금 하락폭이 더 큰 바람에 휘발유와 경유 가격 차이는 더 줄었다.
그러자 일부 주유소에선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추월하는 가격 역전 현상마저 발생했다. 지난 6일 기준 서울 종로구 A주유소 경유 판매 가격은 리터당 1999원으로 휘발유의 리터당 1989원보다 비쌌다.
화물차 운전자 양모씨는 “3월부터 이어진 경유값 인상 때문에 나를 포함한 화물차 기사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름값을 빼고 나면 한 달에 가져가는 수익이 이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충남에서 화물차를 몰고 있는 40대 기사 박모씨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박씨는 “이전부터 경유값이 무섭게 오르더니 살다 살다 휘발유보다 더 비싸진 건 난생 처음 본다”며 “수입은 그대로인데 기름값으로 전보다 200만~300만원은 더 나가다 보니 외식을 자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거리 수송업을 하는 트럭 운전자 40대 김모씨는 “얼마 전까지는 요소수로 고통받더니 이제는 기름값으로 난리”라며 “정유사에서 기름값을 내리겠다고 했었는데 오히려 점점 오르니 막막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경유차의 유일한 장점이 연비인데 이제는 그마저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도 그리 밝지는 않은 상황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국제 시장에서 이미 경유가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며 “동일한 유류세 인하율에도 할인 금액이 달라 경유와 휘발유 격차가 더 줄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석유공사 측은 “이번주 국제 유가는 EU(유럽연합)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 계획 논의로 상승세를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정유업계 관계자 A씨는 “천연가스도 가격이 많이 오르는 바람에 이를 대체해 온 경유의 수요가 더 늘어 수급 불균형이 생겼다”며 “앞으로 경유 가격이 어떻게 될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어떻게 될지와 연관돼 있어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 B씨는 “우리나라에서도 세금 효과를 제외하면 이미 경유가 훨씬 비싼 상황이고 마진도 더 높은 상황”이라며 “사실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항공 수요가 크게 줄자 등유 생산량은 줄이고 그만큼 경유 생산을 늘려왔지만, 현재 태부족인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B씨는 “다만 엔데믹 상황이 되면서 항공 수요가 조금씩 늘어 등유 생산도 원래대로 해야 하는데 경유 생산이 부족해 계속해서 경유 최대 생산 모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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