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잇단 임금 인상에…‘비용發→임금發 인플레’ 조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9일 11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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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촉발된 ‘비용발(發) 인플레이션’이 임금 인상으로 인한 ‘임금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에 육박한 가운데 최근 높은 물가를 바탕으로 한 노동계의 인금 인상 요구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기업들이 10% 안팎의 임금 인상에 나서면서 큰 폭의 임금 인상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렇게 오른 임금이 반영되면 다시 재화와 서비스 가격이 올라 하반기(7~12월) 물가를 더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고물가 반영한 임금 인상 요구 봇물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노사협의회를 통해 올해 전 사원의 평균 임금을 9% 인상하기로 했다. 최근 10년 내 가장 높았던 지난해(7.5%)보다 높은 인상률이지만 삼성전자 노동조합 소속 직원들은 두 자릿수 인상률을 요구하며 노사협의회 합의안을 거부하고 있다. 앞서 LG전자(8.2%) 등 LG그룹 계열사 노사도 각각 8~10%대 임금 인상에 합의했다. 카카오는 올해 임직원 연봉 예산을 15% 늘렸고, 네이버 노사도 연봉 재원을 10% 늘리기로 합의했다.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임금 인상 흐름을 이끌면서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중소·영세 기업까지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동계는 올해 높은 임금 인상률을 요구하는 근거로 고공행진 하는 물가를 내세우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 실질임금이 감소하기 때문에 명목임금을 물가 상승률보다 더 큰 폭으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 대비 4.8% 올라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 10월(4.8%) 이후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 연속 3%를 넘었다. 한국은행은 이달 3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앞으로도 물가 상승 압력이 이어지면서 당분간 4%대 오름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이 같은 물가 흐름을 반영해 올 2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올해 임금 인상 요구율을 8.5%로 제시했다. 2018년(9.2%) 이후 가장 높은 인상 요구율이다. 한국노총 측은 “최근 10년여 만에 물가 상승이 최대 폭으로 이뤄져 노동자 가구의 생계비가 급증했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한국노총보다 높은 약 10%로 요구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통상 하반기에 임금 협상이 집중되는데 산별 노조 대부분이 연맹의 요구율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임금과 물가의 부정적 연쇄 효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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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같은 임금 인상 추세가 가뜩이나 높은 물가를 하반기에 더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생산자 비용 증가로 시작된 물가 상승이 인건비 증가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재화와 서비스 가격이 오르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최근 노동시장 내 임금 상승 압력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물가 상승률이 높은 시기에 노동 비용이 더욱 쉽게 물가에 전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물가 상승→임금 상승→물가 추가 상승의 악순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임금과 물가 간의 악순환이 현실화하면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생산성이 향상돼 임금을 올려주는 일부 기업들은 괜찮겠지만 생산성과 괴리된 임금 인상이 전반적으로 확산되면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명예교수는 “기업과 근로자는 노사 협력으로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정부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더 나아가 기업 생산성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의 관련 보고서도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이차 효과의 부정적 효과를 완화하기 위해 경제 주체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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