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그룹을 포함한 재계 주요 그룹과 우아한형제들, 마켓컬리, 쿠팡 등 대표 유니콘 기업들이 이달 24일 ‘신(新)기업가정신 선언’을 공동 선포하고 관련 협의체를 발족한다. 기업이 이윤 추구에서 나아가 고용과 지역균형 발전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표현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계획은 미국 대표 경제협의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이 2019년 ‘회사의 목적에 관한 선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것을 벤치마킹해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 대기업-유니콘 아우르는 협의체 발족
1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등 5대 그룹을 포함한 주요 그룹과 대표 유니콘 기업들은 이달 24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공동으로 신기업가정신 선포식을 연다. 이들은 선포식 직후 가칭 ‘ERT(Entrepreneurship Round Table·신기업가정신협의체)’를 발족한다.
선포식에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등이 직접 참석한다. 이 외에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이형희 SK SV위원장, 하범종 LG 사장 등 주요 기업 대표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쿠팡은 강한승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한화, 두산 등의 다른 그룹 계열사 대표들도 다수 동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이 새로운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해야 초저성장 시대 기업의 생존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전통적 대기업들 외에도 유니콘 기업들이 다수 참여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선언 및 협의체 출범을 주도하고 있는 최 회장은 지난달 말 대한상의 좌담회와 3월 임직원 타운홀 미팅 등에서도 신기업가정신 발굴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기업들은) 과거 수출을 많이 하고 세금 잘 내는 사업보국에 충실하면 됐지만 최근에는 사회 문제와 기후위기 등이 어젠다가 되고 있다”며 “시대 변화에 맞춰 기업의 역할도 변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RT는 이번 선언이 구호로만 그치지 않고 향후 개별 기업들 간 협의를 통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는 협의체 기능을 하게 된다. 당일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기업 대표들이 ERT의 초대 위원이 될 예정이다. 위원장은 추후 선임할 예정이다.
○ 美 3대 경제단체 BRT 표방… 민관협력 확대
주요 그룹 총수와 유니콘 창업가를 아우르는 이번 선포식은 미국 BRT의 2019년 공동선언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BRT는 1972년 프레드 보치 당시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경영자(CEO) 등의 주도로 출범했다. 미국 매출 기준 상위 200대 대기업이 참여한 협의체로 전미제조업협회, 미국상공회의소와 함께 3대 경제단체로 꼽힌다.
BRT 역시 과거에는 법인세 정책 등 기업 이익에 밀접한 사안에 대해 공통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나 2019년 선언을 통해 그 정체성을 더욱 확대했다. BRT는 회사 경영방침을 ‘주주 중심’에서 사실상 사회 구성원 모두를 가리키는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선회한다고 선언해 화제가 됐다. 여기에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팀 쿡 애플 CEO, 메리 배라 제너럴모터스(GM) 회장 등 미국 대기업 CEO 181명이 참여했다. 1977년 공동으로 서명한 ‘기업은 주주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선언문도 42년 만에 ‘기업은 경제 이해당사자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로 바뀌었다.
이번 신기업가정신 선언과 ERT 출범은 BRT의 진화를 한국 실정에 맞도록 도입하려는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협의체는 6월 중 1차 위원회를 열고 구체적인 협의 안건을 좁혀 나갈 예정이다. 속도를 통해 실천 의지를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주요 어젠다는 고용 확대를 위한 기반 조성, 지역 사회 문제 해결, 탄소 배출 저감, 협력사 동반 성장 등을 포함하는 사회적 현안들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과 유니콘 기업들 모두 ‘기업가’의 차원에서 동참해 함께 사회적 가치를 쌓을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 나가는 자리”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2주 만에 구성되는 ERT가 새 정부의 민간주도 경제 성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도 주목된다. 과거와 같은 ‘성장 후 재분배’가 아니라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통한 ‘이해관계자들의 동시 성장’을 모토로 내걸 가능성이 큰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표방해 왔다. 10일 취임식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시장경제의 회복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선포식을 통해 선대 창업주를 이어 경영 현장에 자리 잡은 3, 4세 총수들과 창업가들의 새로운 기업가정신을 사회에 환기하는 한편 향후 기업들이 우리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바꿔 나갈 수 있는 부분들을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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