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과 밀착 행보를 보이면서 국내 대기업들의 위상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경제 안보 기술’ 협력이 강화된 결과다. 양국간 협력 강화는 특히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한국 대기업들의 입지를 한층 더 개선하는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원전, AI(인공지능) 등에서 포괄적인 협력 관계를 맺기로 합의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특히 삼성전자에 공을 들였다. 그는 지난 20일 오후 5시30분 경기 오산시 미국 공군기지를 통해 한국에 도착한 즉시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으로 이동해 윤석열 대통령과 만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두 정상을 영접했다.
외국 정상이 한국을 방문해 기업 현장을 가장 먼저 찾은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방한에서 한국과 미국의 두 정상이 얼굴을 마주한 곳은 통상적인 순방 일정인 정상회담과 만찬을 제외하면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이 유일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방한에서 한미간 반도체 동맹이 주요 현안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반도체 없이는 미래 산업을 키울 수 없고 삼성전자 반도체 없이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다.
삼성전자 평택 공장은 최첨단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 생산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기지다. 규모만 축구장 면적 400개 크기다. 기흥·화성과 미국 오스틴·테일러 공장을 잇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연결고리 역할도 하고 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소집한 반도체 회의에 삼성전자를 초청했으며 지난해 10월부터 열린 공급망 대책 회의에도 외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삼성전자를 포함했다. 이번 방문으로 삼성전자 반도체의 중요성이 또다시 인정받게 됐다.
중국을 겨냥해 ‘경제 안보’ 강화에 나선 미국 입장에선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 윤석열 정부도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선언하면서 미국 중심의 경제 동맹에 힘을 실어줬다.
특히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중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을 착공한다. 미국 입장에선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 전략의 최대 협력자이면서도 해외 투자자 중 ‘큰 손’인 삼성전자를 대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국내 대기업들도 삼성전자 못지 않게 위상이 높아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21일) 저녁 국내 5대 그룹 총수와 6대 경제단체장 등 주요 경제인들과 만찬을 가졌다. 그동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은 북한 등 외교안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이번 방한은 확실히 ‘국내 기업인’에 방점이 찍힌 모양새다.
22일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단독으로 면담을 갖는다.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에 6조3000억원을 투자해 연간 30만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전기차는 미국 정부의 주요 육성 산업이며 전기차 배터리도 바이든 행정부의 공급망 다변화 정책의 핵심으로 꼽힌다.
특히 이번 현대차 공장 설립을 통해 총 8500여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등 미국 내수와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만남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정 회장에게 미국 투자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할 예정이다.
다만 한국이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참여하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 지난 16일 중국의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영상회담에서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며 견제했다.
재계에선 미국과의 동맹은 분명 중요하지만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과의 관계 개선 역시 중요한 숙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줄타기 외교’가 필요하다”며 “기업도 중국 내 투자 확대 등 우호적인 움직임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