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적자로 경영위기에 직면한 한국전력이 2년여 전부터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해 ‘기관장 업무추진비’를 대폭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랐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등 대외 돌발 변수에 더해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전기요금 결정 체계가 맞물리면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탓이다.
한전은 지난해 5조8000여억원, 올 1분기에만 벌써 7조8000여억원의 적자를 기록 중이다.
26일 <뉴스1>이 한전과 산하 5개 발전공기업이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공시한 최근 3년간 기관별 업무추진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전 사장은 2019년 업무추진비로 917만9600원, 2020년 391만6800원, 2021년 375만8000원을 썼다.
2019년 대비 2020년 업무추진비가 ⅓ 가까이 줄었는데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대외 활동 위축도 있지만, 한전의 영업실적에 더 기인한다.
한전은 2019년 한 해 1조2765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후 재무 건전성 향상을 위한 방안들을 추진했고, 기관에서 소위 돈을 가장 아끼기 쉬운 업무추진비부터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이 같은 다양한 자구노력을 통해 한전은 이듬해인 2020년 4조863억원의 흑자를 기록, 겨우 적자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전까지 평균 1000만원이던 기관장 평균 업무추진비도 30%선인 300만원대로 현재까지 지출이 고착화한 모습이다.
한전 산하 발전공기업들의 기관장 업무추진비 다이어트도 눈에 띈다. 한 해 수백만원을 쓰던 이전과 달리 지출을 가장 적게는 수십만원까지 줄인 곳도 있다.
한국서부발전은 2019년 한 해 기관장 업무추진비로 558만9000원, 2020년 149만5000원을 썼다. 하지만 지난해 지출금액은 21만8000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기관장 씀씀이부터 대폭 줄였지만, 적자액 규모가 더 커진 데는 한전의 예측 범위를 벗어난 대외 여건과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전기요금 결정 구조의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등으로 치솟은 국제 연료 값이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은 데다 그 영향도 장기화하고 있다. 여기에 전기 요금에 생산 원가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이 한전을 절벽으로 내몰고 있다는 평가다.
그나마 한전에 연료비 상승 원가분을 반영해 전력을 파는 발전공기업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생산 원가 상승분은 다 주면서도 ‘전기 요금’으로 손실분을 충당할 수 없는 한전의 상황만 한계에 내몰리는 형국이다.
뒤늦게 정부가 전기요금 ‘원가주의’ 확립을 추진하고, 원전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에서 전력산업의 체질을 꾀한다고 나섰지만, 중장기 대책이다 보니 당장 발등의 불을 끄기에는 어려운 현실이다.
최근에는 정부가 민간발전사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며 한전에게 전력구입비를 깎아주는 긴급정산 상한가격 제도까지 신설·적용하겠다는 대책까지 내놨지만, 역시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기요금 현실화밖에는 없다”면서 “당장의 요금 인상이 어렵다면 현재 제도적으로 정착이 돼 있는 연료비 연동제라도 먼저 제대로 작동하게 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그래도 적자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최소한 내년에 자본잠식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며 “한전과 같은 국내 우량 기업의 자본잠식은 국가 신용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한전은 발전자회사 등 전력그룹사 사장단과 ‘전력그룹사 비상대책위원회’를 갖고, 경영위기 타개를 위한 비상대책 방안으로 발전연료 공동구매 확대, 해외발전소 및 국내 보유 자산매각 등을 통해 6조원가량의 재무개선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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