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항공 고객센터(콜센터)에 전화를 건 A 씨는 오래 걸리는 상담 연결에 속이 타들어갔다. “코로나 때문에 지연된다고 안내가 나왔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이 걸렸다. 일을 해야 해서 스피커폰을 켜놓고 계속 기다렸다”고 전했다.
항공사 고객들 사이에서 A 씨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는 불만이 넘쳐나고 있다. 국내 주요 항공사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수십 분을 기다리는 건 기본이라는 것이다. 콜센터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거 이직했는데 충원이 안 되고 있어서다. 콜센터 직원들은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해 인력이 50∼60% 수준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사람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전보다 급여를 더 주고 인센티브를 챙겨준다고 해도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2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최근 여행 수요가 급증하면서 항공사와 항공사 관련 외주 업체의 인력난이 점차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년간 업계 침체로 인해 인력이 많이 빠져나갔는데 회복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국내 6개 상장 항공사 직원은 2019년보다 2300여 명이 줄었다. 6개사 전체 직원 약 3만5000명의 6.5%가 넘는다. 지상 조업사 및 외주 업체들의 인력 감소는 더 크다. 한국공항, 아시아나에어포트, 제이에이에스 등 주요 지상 조업사의 직원은 5800여 명으로 코로나 이전보다 약 25% 감소했다.
인력난 문제는 항공편 운항 횟수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한 해외에서 이미 본격화하고 있다. 대규모 인력 감축 및 구조조정을 단행한 외국 항공사 및 공항들은 인력 부족으로 운항 취소 및 지연, 공항 운영 마비, 각종 서비스 축소 등의 후폭풍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스히폴 공항은 승객들이 탑승을 위해 몇 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영국과 벨기에, 독일 등의 주요 공항도 마찬가지다.
영국 이지젯 항공은 최근 일부 좌석을 떼어내고 탑승 인원을 150명으로 제한했다. 50명당 승무원 1명이 근무해야 하는데, 좌석을 떼어냄으로써 4명에서 3명으로 근무 인원을 줄인 것이다. TUI 항공은 단거리 노선 기내식 서비스를 중단했다. 국제공항협회(ACI)는 “인력 부족으로 인해 유럽 공항의 3분의 2에서 지연 및 운영 차질 문제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 내에서는 “여름은 더욱 지옥일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온다.
미국 제트블루 항공은 가을까지 항공편 10%가량을 감축하기로 했다. 근무량이 늘면서 승무원 이탈이 심해지자 모든 업무 일정을 소화한 승무원에게는 1000달러의 특별보너스도 제공하기로 했다. 델타 항공과 아메리카 항공, 사우스웨스트 항공 등의 소속 조종사 및 승무원들은 과도한 업무량을 호소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항공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코로나19 사태에도 대규모 이탈만은 막았기 때문에 국내 사정은 해외보다 나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다만 조종사나 승무원 인력이 충분한 것과는 달리 항공업을 지탱하는 주변 외주 업체들의 인력난은 여름휴가 시즌을 앞두고 두드러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항공사 임원은 “항공업은 조종사나 승무원이 아니더라도 직원을 교육해서 현장에 투입하기까지 최소 며칠에서 길면 몇 주까지 걸린다”며 “숙련된 근로자를 양산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인력난은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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