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 대표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한 말이다. 숙련된 선원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기존 항해 방식에서 벗어난 자율운항 선박이 미래 해상 모빌리티의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정 대표는 “차세대 선박은 더 이상 승무원들의 숙련도에 제한을 받지 않고, 바다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며 “올해 안에 액화천연가스(LNG)선 자율운항으로 대양 횡단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5달 뒤 그 계획이 실현됐다. HD현대의 자율운항 전문회사 아비커스는 세계 최초로 대형 선박의 자율운항 대양 횡단에 성공했다고 2일 밝혔다. 아비커스는 SK해운과 초대형 LNG운반선 ‘프리즘 커리지’호의 자율운항 대양 횡단 테스트를 진행했다. 프리즘 커리지호는 지난달 1일 미국 남부 멕시코만 연안의 프리포트에서 출발해 파나마 운하 통과와 태평양 횡단 등 33일 간의 운항을 마치고 충남 보령 LNG터미널에 도착했다. 운항거리 약 2만 ㎞ 중 절반인 1만 ㎞를 자율운항으로 항해했다.
선박도 자율주행차량처럼 자율운항 레벨(단계)이 있다. 우선 부분적인 자율운항을 하는 레벨1과 선원이 승선하지만 원격 제어가 가능한 레벨2가 있다. 그 다음으로 선원이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는 레벨3과 완전 무인 자율운항 수준의 레벨4가 있다. 아비커스는 자율운항 레벨2의 운항솔루션인 ‘하이나스 2.0’을 선박에 탑재했다. 하이나스 2.0은 현대글로벌서비스의 통합스마트십솔루션을 기반으로 최적의 경로와 항해속도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날씨와 파고 등의 주변 환경과 선박 상태, 위치 등을 인지해 실시간으로 선박의 조타 명령까지 제어하면서 운항을 한다.
아비커스 측은 “이번 운항으로 연료 효율을 약 7%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은 약 5% 절감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또한 운항 중 다른 선박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해 충돌 위험을 100여 차례 회피했다”고 설명했다.
자율운항 선박 시장은 조선업계에서 가장 눈 여겨 보고 있는 미래 먹거리다. 자율운항 선박은 승무원 인력 운영 부담 및 운항 과실에 따른 해양사고 위험을 크게 줄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물류 혁신과 더불어 선사들의 선박 운영 효율성도 크게 증대시킬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어큐트마켓리포츠에 따르면 자율운항선박 및 관련 기자재 시장은 연평균 12.6%씩 성장해 2028년에는 시장규모가 2357억 달러(약 28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에서는 2018년 엔진제조업체 롤스로이스가 승객 80명을 태운 자율운항 여객선 운항에 성공했다. 일본 미쓰이 OSK 라인(MOL)은 올해 1월 194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자율운항에 성공했다. 노르웨이 ‘야라버클랜드’호도 4월 자율운항 테스트를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소형 선박으로 단거리 자율운항에 성공한 사례들이다. 아비커스는 지난해 6월 12인승 크루즈 선박의 완전 자율운항에 성공한 바 있다. HD현대의 이번 실험은 대형급 LNG 선박으로 장거리 운항을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임도형 아비커스 대표는 “최적 경로를 안내하는 자율운항 1단계 기술을 넘어 실제로 선박을 움직이는 2단계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테스트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대형 상선뿐만 아니라 소형 레저보트용 자율운항 솔루션까지 고도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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