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찾은 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먹자골목. 왕복 10차선을 사이에 두고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장과 맞닿아 있는 이 곳은 평일 낮 시간대라는 점을 고려해도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 모습이었다. 지하철5호선 둔촌동역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10평 남짓한 백반 집은 먹자골목 초입의 1층 점포임에도 점심장사가 한창이어야 할 오후 12시 반에 손님이 딱 2명뿐이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2017년부터 장사를 해오던 백반집인데 주인이 최근 가게를 내놨다. 다른 점포에서도 임차인을 구해달라는 전화가 계속 온다”며 “상인들이 둔촌주공 입주만 바라보던 상황이었는데, 공사가 중단되자 ‘더는 못 버티겠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과 시공사업단의 갈등으로 4월 중순 공사가 중단된 둔촌주공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인근 상권까지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공사업단 측이 7일로 예정됐던 타워크레인 철거를 보류하기로 했지만 중재안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조합원 뿐 아니라 지역사회로 여파가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장 건설 노동자를 대상으로 매출을 올리던 식당들은 벌써 한 달 넘게 제대로 된 수입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재건축 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 숫자만 4000여 명. 공사 중단 이후 현장 근로자가 모두 철수하면서 매출이 바닥을 친 것이다.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34)는 “공사 기간 장사를 하려고 15평 남짓한 가게에 권리금을 1억 원 넘게 주고 들어온 상인들이 꽤 되는데, 이렇게 공사가 중단돼 손해가 막심하다”며 “계약기간이 있어 장사를 무작정 접을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2~3층 상가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장 맞은편 3층 상가에서 원생 50여 명이 다니는 학원을 운영 중인 최모 씨(59)는 입주 후 학원을 확장할 계획으로 지난해 말 같은 건물 내 전용면적 약 20㎡ 크기 점포 3곳을 계약해뒀다. 보증금은 총 2000만 원이 들었고, 월세는 관리비 등을 포함해 200만 원 수준이었다. 지금 당장은 공실 상태지만, 입주 후 원생이 늘어날 것을 대비해 미리 계약을 한 것이다.
최 씨는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라 계약이 10년은 보장되는 만큼 지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입주 뒤 원생이 늘어나면 힘쓰면 수익이 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입주가 지연되면 손실이 너무 커질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깊다”고 설명했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장을 둘러싼 시공사업단과 조합의 갈등은 타워크레인 철수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서울시 요청으로 7일 예정됐던 공사 현장의 타워크레인 철수는 보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공단 측은 ‘크레인 업체들과 협의를 통해 이번주 이후 해체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혀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서울시가 중재에 나섰지만 입장차는 여전하다. 서울시는 지난달 27일 조합과 시공사업단에 공사비 증액계약을 인정하는 내용의 중재안을 발송했다. 조합은 중재안 내용 대부분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시공사업단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합이 3월 법원에 제출한 ‘공사도급변경 계약무효확인’ 소송과 공사계약변경 의결을 취소한 총회 결정을 먼저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양 측이 수용할 수 있도록 중재안을 보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결국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한 발 씩 양보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갈등이 길어질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조합원들과 주변 상인, 둔촌주공 분양을 기다리는 무주택자들”이라며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강대강’ 싸움을 멈추고 협상 테이블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자세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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