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경상수지가 24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만성 적자인 재정수지와 함께 월간 기준으로 3년 만에 ‘쌍둥이 적자’가 확실시되면서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가 총체적 난기류에 휩싸였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경상수지는 8000만 달러 적자로 잠정 집계됐다.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한 것은 2020년 4월(―40억2000만 달러) 이후 2년 만이다.
경상수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수지에서 흑자 규모(29억5000만 달러)가 1년 전보다 20억 달러 감소한 영향이 컸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이 늘어난 탓이다. 여기에다 4월엔 통상 국내 기업의 해외 배당금 지급이 집중돼 경상수지를 끌어내렸다. 4월 배당소득수지는 38억2000만 달러 적자였다.
한은과 정부는 배당금 지급 등 계절적 요인이 사라지면 5월부터 경상수지가 다시 흑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원자재 가격과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상품수지가 더 악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나라살림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통합재정수지도 4월 적자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추가경정예산 등 정부 지출 확대로 통합재정수지는 올 들어 3월까지 이미 33조1000억 원 적자다. 4월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동시에 적자를 기록하면 2019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의 봉쇄 조치 등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빈번해질 수 있다. 쌍둥이 적자가 계속되면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 하락이 우려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물가 지표는 또다시 40여 년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미 노동부는 10일(현지 시간)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년 전보다 8.6% 올랐다고 밝혔다. 월가의 예상치(8.3%)보다 높고 1981년 12월 이후 최대 상승률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전날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7월에 0.25%포인트 올리고 9월에도 더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ECB의 기준금리 인상은 2011년 이후 11년 만이다.
韓경제 거시 건전성 적신호…전쟁-공급망 불안에 원자재값 올라 4월 수입 증가폭이 수출보다 커…‘나라살림’ 재정수지도 적자 예상 통화-재정 정책대응 여력 떨어져…“외환위기 이후 25년만의 위기 우려”
4월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동시에 적자를 나타내는 ‘쌍둥이 적자’가 확실시되면서 한국 경제의 거시 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쌍둥이 적자가 계속되면 대외 신인도가 흔들리고 외국인 자금 유출,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면서 경제위기를 더 증폭시킬 것이라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기준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동반 적자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원자재 가격 급등에 상품수지 악화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수출입 상황을 보여주는 상품수지는 29억5000만 달러 흑자였지만 흑자 폭은 1년 전보다 20억 달러 줄었다. 수출(589억3000만 달러)이 1년 전보다 59억3000만 달러 늘었지만 수입(559억8000만 달러)이 79억3000만 달러로 더 많이 증가한 탓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4월 통관 기준 원자재 수입액은 1년 전에 비해 37.8% 급증했다.
통상 4월에는 12월 결산법인의 외국인투자가 배당금이 반영돼 경상수지를 더 악화시킨다. 올해 4월에도 해외로 배당금이 대거 지급되면서 배당소득수지에서 38억2000만 달러 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적자 규모는 오히려 지난해(―51억6000만 달러)보다 감소해 결국 상품수지 악화가 경상수지를 끌어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은 올해 연간 경상수지를 500억 달러 흑자로 전망하고 있지만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사태,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이 장기화하면서 상품수지와 연동된 무역수지는 이미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무역수지는 4월(―25억1000만 달러), 5월(―17억1000만 달러) 두 달 연속 적자다. 올 들어 5월까지 누적 적자는 78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연간 기준으로 무역수지가 158억 달러 적자를 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쌍둥이 적자’ 현실화…대외 신인도 흔들
나라살림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통합재정수지도 2019년 적자로 돌아선 뒤 올해까지 4년 연속 적자가 예상된다. 정부는 올해 재정 적자가 7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간 기준으로 무역수지와 재정수지의 ‘쌍둥이 적자’가 눈앞의 현실이 된 셈이다. 경상수지와 재정수지의 동반 적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자재 가격 상승은 정부가 제어할 수 없는 대외 요인이 커 상품수지가 더 악화될 수 있다”며 “앞으로 해외여행까지 폭발적으로 늘면 서비스수지마저 나빠져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경상수지 적자가 고착화하면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상수지 적자는 대외 부채를 늘리고 국가 신용도를 떨어뜨린다”며 “결과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수입물가를 더 끌어올려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쌍둥이 적자가 이어지면 향후 경기 침체 등에 대응할 정부의 정책 여력도 제한될 것으로 우려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 지출을 확대해 재정 적자를 유도할 수 있지만 경상수지도 적자가 되면 그럴 여력이 사라진다”며 “추가로 발생할 대내외 변수에 통화·재정 정책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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