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삼립의 ‘돌아온 포켓몬빵’은 빵의 맛과 모양, 151마리 포켓몬의 ‘띠부씰’(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스티커) 등 다양한 측면에서 1999년 처음 출시됐던 모습 그대로를 충실히 재현했다. 그 결과 과거 띠부씰을 추억하는 1980, 90년대생 ‘어른이’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더해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즐기는 어린이들, 그리고 호기심 반 과시 반의 심정으로 빵을 구해보려는 사람들까지 열풍에 합세하면서 2월 재출시 이후 두 달 반 만에 2210만 개 이상이 팔렸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모자라 마트 오픈런, 편의점 순회 등의 진풍경도 펼쳐지고 있다. 2022년 상반기 유통업계의 최고 히트 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포켓몬빵은 어떻게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을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2022년 5월 2호)에 실린 ‘돌아온 포켓몬빵’의 추억 소환 마케팅을 요약해 소개한다.
○ 고객들의 생생한 기억이 재출시 계기
경제가 어려울 때 ‘과거 좋을 때’의 것을 찾는 일종의 레트로 붐이 2010년대 말부터 지속되며 곰표, 코닥 등 옛날 브랜드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SPC삼립에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선보였던 포켓몬빵을 비롯해 국찐이빵, 핑클빵 등 추억의 빵들을 재출시해 달라는 고객들의 요구가 이어졌다. 2021년 8월 래퍼 이영지 씨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포켓몬빵을 찾는다는 글을 올리면서 포켓몬빵이 일부 쇼핑몰 실시간 검색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포켓몬빵 재출시를 요구하는 고객들은 23년 전 제품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남달랐다. 예컨대 “로켓단의 초코롤빵을 다시 먹고 싶습니다. 초코빵 안에 초코크림이 더 많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와 같이 맛과 모양, 정확한 제품명까지 언급하며 재출시를 요구했다. ‘돌아온 포켓몬빵’을 처음 기획한 윤민석 SPC삼립 베이커리 마케팅실 과장은 “포켓몬빵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억이 선명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고객들의 니즈가 실제 수요와 판매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 재출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 추억은 살리고 과오는 개선
사실 포켓몬빵은 1999년 첫 출시 이후 이미 5차례나 재출시가 이뤄진 제품이다.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이 새 시즌에 접어들면 포켓몬빵 역시 리뉴얼을 거쳐 새로운 포켓몬을 테마로 재출시됐던 것이다. 하지만 디지몬, 원피스 등 새로운 인기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면서 빵의 인기도 식어갔다.
이번 ‘돌아온 포켓몬빵’ 기획에서는 리뉴얼을 통해 새로운 제품으로 선보였던 과거 재출시 때와는 달리 현재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실히 수용해 23년 전 제품을 생생하게 구현하고자 했다. 사내에서 ‘그때 그 맛’을 기억하는 직원들을 모아 팀을 꾸렸고, 빵을 한입 베어 문 순간 과거의 맛이 떠오를 수 있도록 수십 번씩 제품을 개선하고 시식하는 과정을 거쳤다. 포켓몬빵의 핵심인 띠부씰 역시 1999년 당시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초창기 포켓몬 151마리로 만들었다. 여전히 띠부씰을 모으는 수집가들을 고려해 그림의 채도, 색상까지 꼼꼼히 확인하며 과거 선보인 적 없는 디자인으로 기획함으로써 참신함을 더했다. 특히 인기가 많은 포켓몬 8마리는 스티커를 두 가지 종류로 만들고, 환상·전설의 포켓몬이라 불리는 뮤와 뮤츠의 띠부씰은 소량으로만 제작해 수집의 재미를 더했다. 가격은 SPC삼립의 빵 가운데 가장 저렴한 1200원을 기준으로 삼았다. 지식재산권(IP) 계약, 띠부씰 제작 등으로 원가 부담이 큰 제품에 속하지만 과거 500원, 700원씩에 사 먹던 제품이 갑자기 비싸진다면 소비자들이 거부감을 느낄 것이라 판단해 가능한 한 최저가에 맞춰 제품을 기획했다.
또 현재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과거 인기로 인해 파생됐던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전방위적인 품질 개선에 나섰다. 과거 소비자들은 스티커를 찾는 데만 급급해 빵은 버리고 스티커만 빼 가는 통에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띠부씰 종류를 확인하기 위해 빵을 주무르는 탓에 소매점주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에 회사 측은 빵이 버려지지 않도록 식감을 더욱 부드럽게 만들고 단맛, 고소한맛, 매운맛 등 다채로운 맛의 제품들을 기획해 선택지를 넓혔다. 또 구입 전 스티커를 확인할 수 없게 스티커 포장을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 라인 증설 대신 기존 라인 활용
24시간 공장을 가동해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SPC삼립은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공장 증설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 30여 종의 기존 제품을 일시적으로 단종해 포켓몬빵 생산 라인으로 돌렸다. 또 새로운 공장 라인을 활용할 수 있도록 냉장 디저트 등 신제품을 출시해 생산량을 늘렸다. 이는 초기 수요가 폭발적일 때 매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며 새로 공장을 지었다가 오히려 수요가 줄어들어 큰 피해를 보는 식품업계 ‘라인 증설의 저주’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과장은 “생산량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인기가 지속되도록 고객의 소리를 충실히 취합,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돌아온 포켓몬빵’은 최고의 히트 상품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 송수진 고려대 글로벌비즈니스대 교수는 “포켓몬빵을 찾고, 구입하고, 자랑하는 과정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전국적인 놀이가 됐다”며 “이처럼 긍정적인 소비자 경험을 브랜드 정체성으로 확립하고 세계관으로 확장하는 게 브랜드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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