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5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한번에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면서 미국 금리가 국내 금리보다 높은 한미 금리 역전을 앞두고 있다.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 국내 증시와 채권 시장 등에서 외국인 자본이 유출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16일 금융시장 등에 따르면 미 연준은 14~15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면서 우리나라(연 1.75%)와 미국(연 1.50~1.75%)의 기준금리 차이가 상단 기준으로 기존 0.75%포인트 차이에서 같은 수준이 됐다. 다음달 13일 열리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더라도, 미 연준이 7월에 ‘빅스텝’을 밟게 되면 한미 금리가 역전된다.
미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에 나선 것은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 시절인 1994년 11월 0.75%포인트 인상 이후 27년 7개월 만에 처음이다.
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질 경우 원화 가치가 하락하고 자산가치 하락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대거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또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국내 소비자물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은에 따르면 콜금리 목표제를 시작한 1999년 5월 이후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됐던 때는 1999년 6월~2001년 2월, 2005년 8월~2007년 8월, 2018년 3월~2019년 10월 3차례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현황을 살펴본 결과, 세 차례의 한미 금리 역전 기간 모두 외국인 자금이 순유입 됐지만, 월 별로 보면 순유출됐던 때도 적지 않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한미 금리차가 역전된 가장 최근 시점인 2018년 3월~2019년 10월 국내 증권과 채권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은 420억5300만 달러 순 유입됐다. 증권 자금은 19억6400만 달러 순유출 됐고, 채권 자금은 440억1800만 달러 순 유입됐다. 이 기간에도 모두 순유입이 됐던 것은 아니고 15개월은 순유입 됐으나 5개월은 순유출됐다. 특히 2018년 9월~12월 4개월 연속으로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증권투자자금이 73억4000만 달러 순 유출됐다. 주식과 채권에서 각각 61억6300만 달러, 11억7700만 달러 순유출됐다.
1999년 6월~2001년 2월에는 외국인 전체 증권투자 자금이 175억8700만 달러가 순유입됐고 이 가운데 증권이 207억9500만 달러 순유입, 채권이 32억700만 달러 순유출됐다. 이 기간 한미 금리 역전폭이 1.5%포인트로 역대 가장 컸던 2000년 5월에는 9억6000만 달러 순유출됐다. 특히 채권 자금이 16억9300만 달러 순유출 됐고, 증권 자금은 7억8600만 달러 순유입됐다.
2005년 8월~2007년 8월에도 전체 증권투자자금은 233억5200만 달러 순유입됐다. 증권 자금이 257억3100만 달러 순유출 됐고, 채권자금은 490억8400만 달러 순유입됐다. 2006년 5~7월에는 증권과 채권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7억800만 달러 순유출 됐다. 증권에서 110억9300만 달러 순유출됐고 채권에서는 40억1300만 달러 순유입됐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보다 국내 기준금리가 낮아졌던 때는 모두 26차례로 이 사례 중 외국인 자금이 유출됐던 경우는 2차례에 불과하다. 미국보다 낮은 정책금리가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유출을 유발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최근의 경우 과거와는 다르다는 시각이 많다. 당시에 원달러 환율이 900원까지 내려가기도 하는 등 원화가 강세 였지만 최근엔 원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고 국제수지 역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286.4원)보다 4.1원 오른 1290.5원에 마감하면서 2009년 7월 14일(1293.0원) 이후 12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유가 급등에 따른 상품수지 흑자 규모 축소에 외국인 배당 지급까지 겹치면서 경상수지도 2년 만에 적자 전환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4월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8000만 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미 금리 역전은 불가피한 데 자본유출, 환율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신인도에도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만약 우리나라가 제대로 잘 대응을 못한다면 자본유출이 생기고 환율이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이 좀 잘 돼야 하는 데 최근에는 그런 긍정적 요인이 별로 없다”며 “국제유가가 이미 충분히 높은 상황에서 환율까지 올라가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만 작용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금리를 올려서라도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과거에도 한미 금리가 역전됐던 적이 있었지만, 그동안 외국인 채권 자금이 주식 자금보다 빠져나간 정도가 크지 않았는데 최근 우리나라 국채시장을 보면 빠져나가는 게 더 커지고 있다”며 금리차가 많이 벌어지면 돈이 들어올 요인이 아무래도 적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유출 보다 원화 약세에 따른 물가 급등 문제를 더 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은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 자본유출 보다도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수입물가를 끌어 올려 인플레이션을 높인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며 ”과거의 경우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 우리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수출이 늘고, 경기에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원화만 약세가 아니라 글로벌 달러 강세 기조 속에서 다른 통화들도 똑같이 약세이기 때문에 과거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약하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금리가 좀 높은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한·미 금리차가 항상 역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금리 차가 역전된다고 자본유출이 굉장히 대규모로 일어나거나 환율이 오르거나 하는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현재 우리 상황을 볼 때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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