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막고 인구위기 해결” 산업계, 해법 찾기에 팔 걷어
LGD ‘육아기 자율근무제’ 도입, 삼성전자는 어린이집 신축 검토
SK하이닉스 “난임 휴가 확대”… 포스코, 500만원까지 출산장려금
전문가 “저출산, 기업 성장도 위협… 정부와 적극 공동 보조땐 효과 커”
김지숙 LG디스플레이 책임(41)은 입사 16년 차이자 네 살 아이를 둔 워킹맘이다. 그는 하루에 두 번 출근한다. 아침에 경기 파주시의 사업장으로 출근해 오전 회의와 업무를 마치고 점심 미팅까지 한 뒤 오후 2시 반에 노트북을 싸서 나온다. 경기 고양시의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3시경. 아이를 하원시킨 뒤 집에서 간식을 챙겨주고 나면 3시 반쯤 친정어머니가 도착한다. 이때가 김 책임의 두 번째 출근 시간이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그는 오후 4시에 잡힌 화상회의에 참석하고 나머지 업무를 처리한 뒤 6시 반에 두 번째 퇴근을 한다. 김 책임은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 종일이 아니라 중간중간 짧은 시간만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그것 때문에 휴직하는 일은 없어진 것 같다”면서 “팀원들에게 미안해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게 되는 것도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
14일 LG디스플레이에 따르면 지난해 말 도입한 ‘육아기 자율근무제’ 이용자가 엔데믹 이후 부쩍 늘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이하 자녀를 둔 워킹맘, 워킹대디가 육아 스케줄에 따라 근무 시간과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국내에서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유연근무제의 한 형태다.
기업들로서는 육아 때문에 임직원들의 경력 단절과 업무 공백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편으로는 기업들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팔을 걷어붙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한국은 합계 출산율이 0.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였다.
SK하이닉스는 아예 ‘사내 구성원 출산율 확대’에 도전하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3월 회사 10주년 기념행사에서 “사회적 난제에 하나 도전하라고 한다면 저출산 문제”라고 했다. 그는 “회사 구성원의 출산율을 올린다면 사회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난임, 출산, 육아 모든 프로세스에서 제도적 개선을 하겠다”고 했다. SK하이닉스는 이후 임직원 중 임신, 출산, 육아 단계별로 대상을 구분해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난임 치료와 시술에 필요한 유급휴가를 기존 3일에서 5일로 확대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여성 임직원의 체외 및 인공수정 시술 등 난임 시술 비용도 횟수에 제한 없이 지원하고,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3개월 돌봄 휴직을 주는 제도도 신설했다.
삼성전자는 임직원들이 가장 많이 요구하고 있는 어린이집 신축을 검토하고 있다.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부회장)은 지난달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경기 수원 사업장은 만 1, 2세 어린이집 입소 대기가 많다고 들었다. 영아 전용 어린이집을 신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입양을 결심한 사원들의 초기 양육기 적응을 위한 ‘입양 휴가’를 도입한 기업도 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지난달 사내 온라인 소통창구를 통해 입양을 준비하던 한 여직원의 지원 요청을 받았다. 권 부회장은 “입양은 정말 어려운 결정이며 사회적으로도 매우 필요해 회사 차원에서 배려가 꼭 필요하다”면서 적극 검토를 약속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후 5일간의 ‘아동 입양 휴가제’를 도입했다.
일찍부터 저출산 문제에 관심을 가져 왔던 포스코는 2017년부터 ‘신(新)포스코형 출산장려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난임 치료를 위해 연간 최대 10일까지 휴가 사용이 가능하고 출산장려금도 첫째는 200만 원, 둘째 이상은 50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한국보다 훨씬 앞서 나타난 일본에서는 2016년부터 정부가 기업들에 재택근무나 근무일수 단축을 장려하고 있다. 도요타가 자녀가 있는 직원은 상시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하고 ‘자녀 수당’을 도입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인구학회장을 지낸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저출산은 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들의 지속 가능성에도 큰 위협”이라며 “지금까지 저출산 극복 노력은 정부와 학계를 중심으로만 이뤄져 왔지만 결국 민간 기업들이 적극 참여해야 더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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