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괌 여행을 다녀온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인 2019년보다 크게 오른 물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A씨는 “아이들이 있어서 음식을 덜 시켰는데도 4인 가족 한 끼에 60달러(7만7000원)이상은 기본이었다”며 “코로나 이전 물가를 생각하면 안 된다. 환율이 높아진 것도 있겠지만 코로나 전 보다 물가가 20~30%는 오른 느낌 이었다”고 말했다.
동남아도 고물가 상황은 마찬가지다. 싱가포르를 다녀온 B씨는 “물가가 정말 많이 올랐다. 맥주 작은 캔 하나에 6달러(5500원)이더라. 숙박료도 코로나 전 보다 30% 이상은 올랐다고 하더라”며 “동남아는 조금 싼 편이라고 하던데 그렇지만도 않다. 특가 항공권을 구매하지 않았다면 여행비용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출장을 다녀온 C씨는 “미국에서 공유 차량 우버를 탔는데, 유가가 올랐다고 추가 비용을 받더라. 고환율에 고유가까지 겹치면서 나도 모르게 현지에 소비를 덜 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여행 관련 카페에서는 “4인 가족이 괌 일주일 경비로 800만 원은 훌쩍 쓴다. 하루 2끼 먹는 것도 부담스럽다”, “사이판, 하와이는 더 난리다. 숙박료 등 관광 인프라 가격은 더 비싸다”, “여행 계획을 취소해야겠다. 못 가서 다행이다”는 등의 아우성으로 가득했다.
이처럼 높아진 물가 때문에 해외여행 부담을 호소하는 여행객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에 코로나 사태 이후 여행 수요가 살아나고는 있지만, 고유가와 고환율, 고물가 등의 3중고가 여행·항공업계의 회복을 발목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행비용이 너무 많이 들다보니 여행을 가려는 분위기가 지속되지 못하고 꺾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미국과 유럽의 소비자 물가 지수(CPI)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5월 미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8.4%가 올랐다. 1981년 이후 41년 만의 최대폭 상승이다. 유럽도 유로존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8.1% 상승했다. EU가 시작된 1994년 이후 최고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인플레이션, 유가 급등 등의 상황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외신들은 “고물가로 인해 현지인들의 소비가 10~20% 정도 줄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지난 한달 동안의 여행 지출 규모가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지난달 미국의 항공편 예약이 전 달 보다 2.3% 감소했다는 분석도 있다.
항공운임도 계속 오르고 있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물가지수 중 국제항공료 지수는 지난달 128.7을 찍었다. 2020년을 100이라고 했을 때를 기준으로 지수를 산출하는데, 2020년 보다 29% 정도 항공료가 오른 것이다. 올해 1~5월 평균 국제항공료 지수는 119였다. 2020년 보다 19% 가격이 올랐다는 의미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심리는 상승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5월 소비자동향 조사에 따르면 여행비 지출 전망은 올해 초 87에서 지난달 104까지 올랐다. 100이 넘으면 여행 지출을 할 의사가 크다는 뜻인데, 물가와 항공운임 상승에도 불구하고 억눌려 있던 해외여행 심리가 폭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여행·항공업계에서는 여행 심리 회복이 고물가로 인해 반짝 현상에 그치진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항공업계 한 임원은 “항공업이 호황일 땐 국민들이 연 평균 2회 이상 해외 여행을 갔다. 단기적으로는 여행 수요가 늘겠지만, 여행비용 부담으로 한 번은 가도 두 번은 가지 않는 침체기가 올 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여행 문의가 늘고는 있는데, 비싸다는 넋두리를 꼭 하신다. 해외에서도 큰 소비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여행 수요가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데 높은 물가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덜 오른 일본, 동남아 일부 국가들에 대한 여행 수요 유치에 집중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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