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20일 전자계열사 경영진 25명이 모인 가운데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고 최근 경제상황 점검 및 경영활로 모색에 나섰다. 삼성 사장단이 공식적으로 사장단 회의를 연 건 2019년 이후 3년 만이다. 현재의 글로벌 경영 환경을 그만큼 긴박한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8일 유럽 출장을 다녀오며 “시장에 여러 혼돈과 변화와 불확실성이 많다”고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사장단 회의는 삼성전자의 두 대표이사인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부회장)과 경계현 반도체(DS)부문장(사장)이 주재했다. 경기 용인시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오전 7시 30분부터 8시간 넘게 자유토론 형식으로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 황성우 삼성SDS 사장,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등 전자 관계사 경영진이 모두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충격, 정보기술(IT) 제품 수요 급감 등 최근 글로벌 경제를 흔들고 있는 주요 리스크 점검이 이뤄졌다. 스마트폰, 가전,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자부품 등 전자 관련 회사들은 대부분 경기에 민감해 최근의 물가 상승이나 소비 침체 우려 등으로부터 특히 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각 계열사별로 디테일한 수치를 분석하기보다는 맞닥뜨린 환경과 해결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삼성 사장단 회의를 통해 추가적인 투자 동력을 마련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도 유럽 출장에서 글로벌 경제 상황을 직접 점검하고 돌아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사장단 회의에서도 기술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자본 투입이나 인재 확보의 필요성이 집중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 부회장과 경 사장은 “기술로 한계를 돌파해 미래를 선점해야 한다. 우수인재 확보에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삼성은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 뒤 공식적으로 사장단 회의를 중단했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부문별 사장단이 모이는 회의를 진행해 왔다. 2019년 6월 미·중 무역분쟁과 8월 일본 수출 규제 당시 이 부회장이 직접 주재한 사장단 회의가 열렸다. 각 계열사별 독립경영을 하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룹사 전체 역량을 모아왔던 셈이다.
이날 사장단 회의 참석자들은 위기 상황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를 늦추지 말고 오히려 가속화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적 의사결정이 늦어지면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기존과 다른 공급망 확보와 관리, 미래 경쟁력 확보 등에 대한 의견들도 오갔다.
유연한 조직 문화로의 변화도 사장단 회의 내 주요 이슈였다. 기술력 확보를 위해선 우수 인재 영입이 필수적인 만큼 인재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에 따라 삼성이 나이와 관계없이 인재를 중용하는 내용을 뼈대로 지난해 처음 선보인 ‘미래지향 인사제도’가 한층 강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사장단 회의가 사업장이 아닌 인력개발원에서 열렸다는 것도 향후 그룹 전체의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분석이 있다.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등 다른 기업들도 총수가 직접 주관하는 전략회의를 이미 열었거나 다음달 진행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경영 환경이기 때문에 중장기 전략들도 수시로 점검해서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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