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300원 뚫렸다… ‘셀코리아’ 가속
1301.8원 마감, 13년 만에 처음… 외국인 “팔자”에 코스피 또 연저점
실물-금융 복합위기 심화 우려… 파월 ‘경기침체’ 언급… S공포 확산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1300원을 돌파했다. 고환율이 가뜩이나 높아진 물가와 해외 자본 이탈을 부채질하면서 실물경제와 금융의 복합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5원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한 1301.8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종가 기준 1300원을 넘어선 건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7월 13일(1315.0원) 이후 12년 11개월 만이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이후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안전자산인 달러가 초강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단 사흘을 빼고 줄곧 올라 65원 가까이 급등했다.
특히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경기 침체 가능성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하며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 공포에 불을 지폈다. 파월 의장은 22일(현지 시간)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금리 인상으로 경기 침체가 일어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경기 연착륙을 달성하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일”이라며 다음 달에도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달러 환율 상승이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을 부추기고 외국인의 ‘셀 코리아’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특히 원화는 재정·무역수지 적자와 가계부채 등 종합적 리스크가 반영돼 유독 더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의 ‘패닉 셀링’(공황 매도)이 계속되면서 국내 증시는 이틀 연속 연중 최저점을 갈아 치웠다. 코스피는 1.22% 하락한 2,314.24로 마감했다. 이는 2020년 11월 2일(2,300.16) 이후 1년 8개월 만에 최저치다. 코스닥지수도 4.36% 급락한 714.38에 장을 마쳤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서만 5조7000억 원이 넘는 한국 주식을 내다팔았다.
원달러 환율 13년만에 1300원 돌파 원화값 ―4.86%때 유로화 ―1.05%…수출의존 韓, 글로벌 침체에 더 취약 외환위기-엔저쇼크-금융위기 이어환율 1300원 넘은 4번째 사례
경제 위기 때마다 찾아오던 ‘환율 1300원 시대’가 13년 만에 현실화하면서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글로벌 긴축 행보에 경기 침체 우려까지 겹쳐 안전자산인 달러 강세는 세계적인 추세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원화가 유독 약세를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환율이 조만간 1350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고환율이 물가 상승 압력을 더 높이고 이는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이어져 경기 하강 속도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1300원 뚫은 환율…위기 수준 진입
23일 원-달러 환율은 외환시장 개장 이후 약 10분 만에 1300원을 뚫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환율 상승에 따른 시장 불안 등 부정적 영향이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장 안정 노력을 하겠다”며 구두 개입성 발언을 내놨지만 결국 1301.8원에 마감했다.
과거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위로 올랐던 적은 세 차례뿐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2000원 가까이 치솟았고 일본의 제로금리 정책으로 엔저 여파가 컸던 2001∼2002년 1300원대에 머물렀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2009년 1300원을 넘었다가 13년 만에 1300원 시대를 연 것이다. 그만큼 환율이 경제 위기 상황에 진입했다는 뜻이다.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으로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최근 미국 등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원화 가치 하락세를 더 부채질하고 있다. 이달 들어 22일 현재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4.86% 떨어져 유로화(―1.05%), 위안화(―0.44%)보다 하락 폭이 크다.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하며 급락 중인 엔화(―5.58%)와 비슷한 수준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기 침체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원화 디스카운트 요인이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지호 이베스트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경기 침체 우려로 수출 지표가 꺾이고 있다”며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효과보다는 원자재 수입 단가 상승에 따른 기업들의 부담이 더 크다”고 했다.
○ 고환율이 복합위기 더 키운다
환율 1300원대가 뉴노멀(새로운 기준)로 자리 잡으면서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 복합위기를 더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환율 상승세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국내 인플레이션을 더 높이는 악순환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환율의 물가 전가율은 0.06으로, 원-달러 환율이 1% 오르면 물가 상승률은 0.06%포인트 뛴다. 수입물가에 영향을 받는 생산자물가도 5개월째 상승세다. 이날 발표된 5월 생산자물가지수(119.24)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환율 상승으로 수입은 증가하는데 수출 증가세는 둔화돼 3개월째 이어진 무역수지 적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환율이 물가 상승을 부추기면서 금리도 더 뛸 것으로 전망된다. 연준이 추가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예고한 데다 물가를 잡기 위해 한은도 빅 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환율은 한 번 오르면 오버슈팅하는 경향이 있어 조만간 1350원 위로 올라설 수 있다”며 “고환율이 고물가로 전이돼 금융위기 수준의 충격이 오기 전에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