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부터 전기와 도시가스 요금이 동시에 오른다. 가구당 추가로 내야 하는 전기·가스 요금은 한 달에 평균 3500원가량일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요금 인상으로 연내 물가 상승률은 24년 만에 처음으로 6%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 10월 전기 및 가스 요금이 추가로 인상될 예정이어서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 상승 폭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27일 한국전력공사는 7월 1일부터 전기요금을 kWh(킬로와트시)당 5원 인상한다고 밝혔다. 분기당 3원으로 정해져 있는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 폭을 연간 최대 조정 폭(5원)까지 올릴 수 있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전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원유, 가스, 석탄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을 반영해 분기마다 책정한다. 지난해 7월 기준 가구 평균 전력 사용량이 256kWh였던 만큼 약 1280원을 더 내야 하는 셈이다. 월평균 307kWh를 사용하는 4인 가구 기준으로는 1535원 인상된다.
일반 가정과 자영업자가 사용하는 도시가스 요금도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으로 다음 달 1일부터 MJ(메가줄·가스 사용 열량 단위)당 1.11원 오른다. 주택용은 7%, 일반용은 7.2∼7.7% 각각 인상된다. 이에 따라 다음 달부터 가구당 평균 도시가스 요금은 월 2220원 오른다.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이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전기와 도시가스 요금은 10월에도 각각 4.9원, 0.4원 오른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6월 또는 7, 8월에 6%대의 물가 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가가 6% 넘게 뛰는 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6.8%) 이후 처음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에 나선 것은 국제 연료비 상승 등으로 한전이 올 1분기(1∼3월)에만 약 7조8000억 원의 영업적자를 내는 등 경영 실적 악화가 심각해서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발전 단가가 비싼 LNG 발전량이 늘어난 것도 적자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국면에서 요금 인상으로 소비를 줄일 수 있도록 소비자에게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치솟는 물가에도 불구하고 전기와 도시가스 요금 인상에 나선 데는 급등한 국제 에너지 가격으로 쌓이는 에너지 공기업 적자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서다. 이전 정부에서 제때 인상하지 못한 요금을 현실화해 국민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을 막겠다는 것. 하지만 전기, 도시가스 요금을 함께 올리면서 6%대에 육박한 물가 상승 압력은 더 커졌다. 특히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산업계에선 약 1조5000억 원의 추가 요금 부담이 예상된다.
○ 탈원전 정책 대규모 적자에 한몫
27일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전기요금 인상 배경에 대해 “한국전력공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은 올해 1분기(1∼3월)에만 7조8000억 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해 연간 적자보다 약 2조 원 많은 규모다. 메가줄(MJ·가스 사용 열량 단위)당 1.11원 오른 도시가스 요금도 한국가스공사의 올 1분기 미수금이 지난해 말보다 1.5배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전 적자에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발전단가가 오른 영향이 적지 않다. 지난 5년간 평균 전력공급 원가는 약 9% 상승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7일 국민의힘 정책의원총회에서 “탈원전 기조로 원전 이용률이 감소하고 가스 발전량이 늘면서 한전 손실이 5년간 약 11조 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에 따르면 이날 함께 강연자로 나선 정승일 한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10번 요청했지만 한 번 승인받았다. 전기요금을 선제적으로 인상했으면 적자폭이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와 도시가스 요금이 동시에 인상되면서 물가 상승률은 더 높아지게 됐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기요금 인상은 대부분의 산업에서 생산비용을 높여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한전의 국내 산업용 전력 판매량은 29만1333GWh(기가와트시)로, 이번 인상으로 산업계로선 1조4567억 원의 전기요금 부담이 추가로 생기는 것이다.
한전은 요금 인상에 따른 취약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기요금 복지 할인 한도를 40%로 늘리기로 했다. 장애인, 유공자, 기초생활수급자의 할인 한도가 추가로 1600원 상향 조정돼 7∼9월 271kWh 사용량까지 전기요금을 전액 지원받는다.
○ “5원으로는 한전 적자 해소 어려워”
문제는 전기요금 5원 인상만으로는 한전의 재무 상태를 개선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한전이 산정한 올해 3분기(7∼9월) 연료비 조정단가는 kWh당 33.6원.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전기를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이 커진 탓에 전기요금을 30원 넘게 올려야 적자를 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들이 추정한 올해 한전의 영업손실 규모는 평균 23조1400억 원. 일반적으로 연료비 조정단가를 1원 올리면 한전의 연간 수입은 5300억 원 증가한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인상으로 7월부터 6개월간 1조3250억 원가량 수입이 늘 수 있다. 올해 최대 30조 원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되는 한전의 적자 해소에는 크게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한전의 자구 노력과 함께 전기요금 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날 전력산업연구회의 ‘전기요금 정상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세미나에서 윤원철 전력산업연구회 연구위원은 “전력판매 부문에서 시장 경쟁을 도입하고 한전 지배구조를 개선해 전기요금 정상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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