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4高 복합위기’… 55% “상반기 목표미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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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망지수, 96 → 79 급락… 2년전 코로나 초기 때와 비슷
“동시다발 악재에 하반기 더 암울… 중소기업은 시한부 환자 같아”

“지금 중소업체는 죽음을 앞두고 버티는 시한부 환자 같은 처지입니다.”

28일 직원 40여 명을 거느린 고무제품 생산업체 A 사장은 현재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업체는 고무를 수입해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한다. 합성고무는 석유를 원료로 사용하는데 고유가로 최근 수입 가격이 30∼40% 올랐다. A 사장은 매달 1000만∼2000만 원 적자에 대출 이자는 월 700만 원씩 낸다. 최저임금, 차량 운임, 대출 금리까지 올라 부담이 더 커졌다. 그는 “당장 부도를 막기 위해 대출 이자라도 갚으며 버티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2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올해 3분기(7∼9월) 제조업체 경기전망지수 조사’에 따르면 기업 체감 경기를 보여주는 3분기 경기전망지수(BSI)가 전 분기(96)보다 17포인트 낮아진 79까지 급락했다. BSI는 100 이상이면 기업들이 해당 분기 경기를 전 분기보다 긍정적으로, 100 이하면 그 반대로 본다는 의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화됐던 시기의 BSI가 2020년 1분기(1∼3월) 75에서 2분기(4∼6월)에 57로 18포인트 폭락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실제 대한상의 조사 대상 2389개 업체 중 54.9%는 올 상반기(1∼6월) 영업이익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업들은 물가 및 환율 불안, 소비 침체 우려 등으로 하반기(7∼12월)에도 실적 리스크가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7월 중소기업 업황전망 경기전망지수(SBHI)도 81.5로 전월 대비 4.6포인트 하락했다. 수입물가 인상분만큼 대기업 납품 단가를 올리지 못한 중소기업들이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고물가·고환율·고금리에 더해 고임금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산업현장에 닥치는 ‘4고(高) 복합위기’를 맞으며 이처럼 우울한 경기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음 달부터 산업 활동의 원재료인 전기·가스요금이 동시에 오르는 점도 부담이 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금리 인상 불확실성을 키우고 무역수지 적자 확대, 임금 상승 우려로 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며 “대기업은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도산하는 중소기업이 늘 수 있다”고 말했다.

車부품사 “자재값-환율 올라 팔수록 손해”… 석유화학, 적자 걱정

원자재값 엎친 데 高환율 덮쳐 매출 늘어도 영업이익 3분의 1
석유화학도 경기전망지수 급락
삼성-현대-LG 글로벌 불황 공포… 협력업체 실적 줄줄이 타격 예상
일부 기업 “이자 갚기도 버겁다”


국내 제조업체들의 체감경기가 급속히 얼어붙은 것은 치솟는 물가와 환율, 복잡한 국제 정세가 한꺼번에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세계 각국이 대거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점차 현실화하고 있는 ‘소비 침체’ 공포는 소비재 회사뿐만 아니라 부품사와 원자재 회사로까지 번지고 있다.


28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발표한 ‘2022년 3분기 경기전망지수(BSI)’에서 BSI가 가장 낮은 업종은 자동차부품(68)과 석유화학(63), 비금속광물(61) 등이었다. 올 초부터 이어진 원자재 가격 급등과 달러당 1300원을 넘나드는 고환율에 직격탄을 맞은 업종들이다. 지역별 BSI를 살펴봤을 때 석유화학과 자동차부품 공장이 밀집한 전남(63), 인천(68), 울산(71), 광주(72), 충남(76) 등의 경기 전망치가 상대적으로 낮게 조사된 배경이다.

자동차부품사들은 최근 매출액이 늘어도 영업이익은 되레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 부품기업 중 하나인 한온시스템의 1분기(1∼3월) 매출은 1조980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6% 늘어났지만 영업이익은 304억 원으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한 부품사 관계자는 “지금은 제품을 많이 만들수록 부담이 커지는 구조”라고 전했다.

석유화학업계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고유가와 원화 약세에 따른 원가 상승,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 설비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 등의 상황이 겹쳤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나프타 평균 가격은 t당 104만3578원으로 작년 평균 가격보다 42.7%나 뛰었다. 증권사들은 2분기(4∼6월)에 석유화학업계 대부분이 적자로 전환하거나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구의 한 직물 염색업체는 작업용 스팀(증기)을 만들기 위해 수입하는 석탄 가격이 3배로 뛰면서 존폐 위기에 놓였다. 이 회사 관계자는 “스팀 값 인상분이 가공료에 제대로 반영이 안 돼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호소했다.

이번 대한상의 조사에서 올해 상반기(1∼6월) 영업이익이 목표치에 미달할 것으로 예상한 기업이 전체의 54.9%로 절반을 넘었다. 목표치를 달성하거나 근접할 것이란 응답은 41.3%였고, 목표치 초과 예상은 3.8%에 그쳤다.


BSI 폭락에서 나타난 것처럼 기업들은 한결같이 “앞으로가 더 문제”라며 걱정에 휩싸여 있다. 이번 조사에서 상반기 실적이 계획치를 밑돌 것으로 본 기업 10곳 중 6곳은 하반기(7∼12월)의 가장 큰 대내외 리스크로 ‘물가·환율 불안’(62.6%·복수 응답)을 꼽았다. ‘소비 위축’(52.3%)을 우려하는 기업도 절반이 넘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글로벌 기업조차 ‘글로벌 불황’에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 소비 제품들의 판매 실적 상승세가 꺾이면 대기업은 물론이고 협력업체들의 실적 전망치까지 줄줄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기업은 이미 현금 흐름이 막혀 금융권으로부터 자금 상환 압박을 받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금리 상승으로 금융비용은 늘어났는데 원자재 가격과 환율 때문에 영업이익이 줄어 이자 갚기도 버거운 상황”이라며 “주변 부품사들도 금융사들로부터 추가 대출이 거부된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실장은 “고물가 고환율 고비용의 압박으로 내수와 수출 모두 침체의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라며 “피해가 큰 업종을 대상으로 원자재 가격 안정, 세제 개선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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