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10년 2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르면서 이르면 이달 6%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소비자물가를 더 끌어올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이 다음 달 13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사상 첫 ‘빅 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앞서 21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하게 제어하지 않으면 고물가 상황이 고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복합위기 속에 소비자들의 체감 경기도 얼어붙고 있어 빅 스텝과 맞물려 내수 침체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과거 위기보다 빠르게 뛰는 기대인플레
29일 한은에 따르면 6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로,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전달 대비 상승 폭(0.6%포인트)도 역대 최대였다.
가계,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물가 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이 오르면 임금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이는 다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앞으로 1년간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주요 품목으로는 석유류(82.5%), 농축수산물(44.2%), 공공요금(31.4%) 등이 꼽혔다. 물가수준전망(163)도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8년 이후 가장 높았다. 최근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이 급등한 데다 생활과 밀접한 밥상물가, 공공요금 등이 줄줄이 오르면서 인플레 기대심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8년 7월∼2009년 7월과 유럽 재정위기와 일본 지진이 겹친 2011년 3월부터 1년간 기대인플레이션율이 4%대에 진입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 상승 속도가 과거 위기 때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에 우려가 나온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인플레이션 위기, 미국의 빅 스텝 등 물가 관련 정보를 예전보다 많이 접하는 영향”이라고 했다. 함준호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높은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실제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고물가 국면을 장기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신호”라고 지적했다.
○ 얼어붙은 소비 심리… “경기침체 우려”
당정이 기업의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서비스요금 통제 등에 나서고 있지만 최근 물가 상승은 해외 요인이 커 통화당국의 고강도 금리 인상 외에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주체들이 현재 연 1.75%인 기준금리를 2.00%로 올린다고 해서 6%대의 고물가가 잡힐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은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빅 스텝 같은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 달 또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시사한 것도 한은의 빅 스텝을 재촉하고 있다.
문제는 한은의 빅 스텝이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 심리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소비자들의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소비자심리지수는 6월 96.4로 한 달 전보다 6.2포인트 떨어졌다. 이 지수가 100을 밑돈 건 2021년 2월(97.2) 이후 1년 4개월 만이다. 100보다 낮으면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가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가계부채가 1900조 원에 육박한 상황에서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 채무 상환 부담이 커지고 가처분소득이 줄면서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이 둔화하는 상황에 내수 경기까지 악화되면 자칫 일본과 같은 장기 경기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원-달러 환율은 15.6원 급등한 1299.0원에, 코스피는 1.82% 하락한 2,377.99로 마감했다. 전날 발표된 미국의 소비심리 지표 부진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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