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성과는 진단 키트 없이 불가능했다. 국내 기업들은 팬데믹 시작과 동시에 빠르게 유전자증폭(PCR) 및 면역 진단 키트를 개발해 전 세계에 수출하며 주목을 받았다. 진단 키트를 생산하는 9개 주요 기업의 합산 영업이익은 2019년 227억 원에서 2020년 1조7406억 원으로 증가했다. 2020년 말 이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약 8조 원으로 2019년의 1조7000억 원에 비해 4배 이상으로 늘었다.
하지만 국내외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감소한 엔데믹 상황에서 이 기업들의 실적 전망에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 5월 기준 하루 평균 코로나 진단 검사 건수는 약 200만 건으로 올 1월(1300만 건)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국내 주요 진단 업체의 코로나19 관련 매출 비중은 평균 80% 수준이어서 앞으로 실적 악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체외 진단 시장은 코로나19를 제외하고도 먹거리가 많다. 코로나19 관련 진단 검사 때문에 글로벌 체외 진단 시장이 크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도 글로벌 체외 진단 시장 규모는 752억 달러(약 95조 원)로 연평균 5%의 성장률이 기대됐다. 체외 진단 시장은 플랫폼만 설치한다면 소모품(키트) 및 유지 보수 마진이 높은 비즈니스다. 코로나19를 제외한 분야의 성장성을 고려하면 높은 마진을 기대할 수 있는 매력적인 비즈니스인 것이다.
국내 진단 기업들 역시 지난해부터 코로나19 관련 매출이 영속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준비해 왔다. 이들이 팬데믹 시기에 확보한 현금과 글로벌 실적을 바탕으로 기존 사업 분야를 강화한다면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체외 진단 업체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1분기(1∼3월) 9개 주요 진단 기업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총합은 약 3조2000억 원으로 6월까지 상승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는 이 기업들 간 인수합병(M&A) 이벤트도 가능하다.
기존에는 ‘체외 진단은 곧 코로나19 진단’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제는 숨겨진 성장 가능성을 봐야 한다. 실적 감소에 대한 우려는 이미 반영됐기 때문에 밸류에이션(가치평가) 측면에서 부담이 덜하다. M&A나 신제품 출시 등 포스트 코로나 전략으로 체질 개선 효과가 나타난다면 글로벌 체외 진단 기업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주요 기업의 포스트 코로나 전략이 드러나는 시기는 올해 3분기(7∼9월) 말에서 4분기(10∼12월) 사이로 예상된다. 코로나19를 기회로 기존 다국적 체외 진단 업체가 과점하고 있던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서는 국내 기업들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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