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신한을 지지, 응원해준 고객, 주주, 직원, 협력사(퓨처스랩, 스퀘어브릿지 기업) 등이 앞으로도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말단부터 사장까지 대화로 ‘소통팔달’… 조직혁신 DNA 심어 一流기업 도약
신한금융그룹 조용병 회장 입사 후 38년간 여러 요직 두루 경험 전화녹음으로 인사민원 해결 유명 "독창성-도전정신 기반으로 재창업"다짐
1980년대 후반. 골치 아픈 인사 업무는 그에게 작지 않은 도전이었다. 당시 조용병 신한은행 인사부 대리는 새로운 실험을 했다. 아무리 인사를 잘해도 은행에서 뒷말이 남기 마련인 법. 인사에서 물먹은 직원들은 인사부 직원에게 원망을 뒤통수에 대놓고 하기도 했다.
‘여기서 오래 일하다간 직원들에게 욕만 먹겠구나.’
조 대리는 인사 민원을 시스템으로 하는 아이디어를 퍼뜩 떠올렸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인사신문고를 전화로 설치하는 방안이었다. 직원들이 공개적으로 제기하기를 꺼리는 예민한 인사 문제를 전화로 녹음해 남겨두면 나중에 녹음을 듣고 해결 방안을 찾는 방식이었다. 군대에서 말하면 이른바 ‘소원 수리’ 방식으로 전화 녹음 시스템을 이용한 것이다.
‘왜 내가 승진이 안 되나’ ‘내 커리어가 잘못돼 꼬이고 있다’ ‘다른 쪽으로 보내주면 잘할 것 같다’ 등등…
대면(對面)으로는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인사 얘기를 전화기에 녹음하라고 하니 많은 직원들이 허심탄회하게 응했다.
조 대리는 전화에 남겨진 민원을 최대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인사담당자가 알지 못하는 직원들의 고충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도저히 안 되는 것은 그 이유를 소상하게 설명해줬다.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리는 직원들도 적지 않았다. 자리와 사람에 대한 미스매치도 있었지만 다행히 크게 엇나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정보기술(IT)이 발달한 지금은 이런 문제를 시스템으로 해결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파격 실험이었다.
‘인사신문고’로 직원들 고충에 귀 기울여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투명한 방식으로 인사 민원을 받으니 직원들의 인사 불만이 확연히 줄어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 안에서 ‘엉클 조’로 불리는 조용병식 인사 방식이었다. 조 회장은 당시 인사부 경험이 직원과 조직을 이해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미금동지점장과 세종로지점장을 3년 남짓 한 다음 다시 신한은행 인사부장으로 돌아왔다. 2년 남짓 인사부장을 한 뒤 기획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7년엔 뉴욕지점장으로 ‘해외 물’을 먹었다.
2009년 임원을 달고부터는 자금국제그룹 전무와 경영지원그룹 부행장, 리테일부문장(부행장) 등 영업과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력을 쌓았다. 최고경영자(CEO)가 되기 위한 경영 수업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온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인사부장 기획부장 등 요직을 거친 뒤 임원을 달 것으로 기대하던 때 느닷없이 뉴욕지점장 발령이 났다. 잘나가던 리테일부문장(부행장)에서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주류에서 밀리는 듯하기도 했다.
2만9000명 이끄는 행원 출신 첫 CEO
그는 신한금융그룹에서 행원 출신의 최초 CEO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대전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84년 신한은행에 입행했다. 1982년에 신한은행이 출범했으니 두 살짜리 은행에 문을 두드린 것이다. 당시 은행은 공공기관이나 다름없던 시절이었다. ‘조상제한서’가 네이밍이 돼 있던 때였다.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의 첫 글자를 딴 ‘조상제한서’가 금융계를 지배했다. 거대 공룡과 같은 시중은행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한발 더 뛰고 부단한 혁신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창업 40년을 맞는 올해 조 회장은 38년을 신한과 함께했다. 2015년 신한은행장에 선임된 2년 후인 2017년 신한금융그룹의 총사령탑인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올랐다. 은행장 선발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에서 그는 ‘GPS’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Global, Platform, Segmentation의 약자다. 조 행장 취임 후 베트남과 일본 진출 등으로 국제화가 가속화됐고, 은행 영업은 IT를 기반으로 시장을 세분화하는 데 성공했다.
신한금융그룹 내에서 조 회장은 ‘엉클 조(Uncle Cho)’로 통한다. 누구와도 편하게 소통하는 ‘삼촌’ 같은 리더십으로 사원에서부터 행장까지, MZ세대부터 586세대까지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쌓으면서 소통하고 있다. 지난해 신한금융그룹의 문화포럼 이후 모든 사내 회의에서 공식 호칭은 직함이 아닌 별명으로 불린다. 회장님 대신 ‘엉클 조’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직원들과의 대면 접촉이 쉽지 않을 때에도 ‘엉클 조’는 사원과 대리급의 오피니언리더그룹, 여성리더그룹과 소통을 이어갔다. 2년 동안 조 회장은 35회, 모두 295명과 언택트로 만남을 이어갔다. 자신의 경영 방침과 철학을 설명하고 현장의 생생한 의견을 듣기 위한 노력이다. 심지어 유럽 출장 중 시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 시간에 맞춰 직원들과 얘기를 나눴다.
현장 목소리 듣는 회장님은 ‘엉클 조’
그는 경영진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최근 조 회장은 그룹 계열사 CEO 및 신한금융지주 임원들과 함께 구간별로 조를 나눠 북한산 둘레길을 완주했다. 행원부터 계열사 사장까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경청하고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원 팀’으로 똘똘 뭉쳐 나가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매일 아침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조 회장은 마라톤 풀코스를 11번이나 완주할 정도로 마라톤광(狂)으로도 알려져 있다. 평소 직원들에겐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한다.
조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도전을 상징했던 지난 40년 역사를 모두의 자부심 삼아 일류를 향한 재창업의 각오를 함께 나누자”고 역설했다. 1982년 ‘새로운 금융, 따뜻한 금융’을 갈망하면서 등장한 신한이 이제 40년을 넘어 100년을 준비하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38년 전 한 젊은 행원의 꿈은 고객과 사회에 울림을 던지면서 2만9000명의 임직원들과 함께 일류 금융그룹으로 향하고 있다. 창업 때 ‘고객중심 금융보국(報國)’ 정신을 조 회장은 ‘일류(一流)’라는 콘셉트로 바꾸고 있다.
조 회장은 “일류 기업은 고유한 역사와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영속적이고 도전적이고 독창적이며 명예로운 가치를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2년 전 신한금융그룹의 중기 전략 ‘FRESH2020s’를 수립한 것도 일류를 향한 그의 다짐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이다. Fundamental, Resilience, Echo System, Sustainability, Human-talent의 앞 글자를 딴 이 전략은 신한금융그룹이 나아갈 길과 가치를 명확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계열사 전직원 ‘혁신ON’ 위한 리부팅
지난해 7월 7일 신한금융그룹의 혁신을 시작하는 새로운 단어가 임직원들에게 울려 퍼졌다. RE:boot. 컴퓨터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켤 때 리부팅되는 것을 아이디어로 삼은 슬로건이다. PC를 켤 때 손끝으로 전해지는 미세하지만 명확한 사인을 통해 신한금융그룹 16개 계열사 임직원 모두에게 혁신이라는 변화의 알람이 켜진 것이다.
신한금융그룹 문화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신호였다. ‘대전환’이란 새롭게 일을 바꾸고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세대,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맞게 조직 문화의 패러다임을 움직이는(Paradigm Shift) 것을 의미했다. 조 회장은 이를 ‘문화대전환’이라고 명명(命名)했다.
“2001년 지주회사 설립과 함께 설정한 비전이 ‘월드클래스 파이낸셜그룹’이었습니다, 이후 가파른 성장을 일궈냈지만 고객 및 사회와 함께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흔히 다른 회사에서 하는 것처럼 외부 컨설팅 회사는 쓰지 않았다. 대신 실무자 중심의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고객과 직원 등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모아 담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더 쉽고 편안한 더 새로운 금융’이라는 비전이었다. 여기에 일상의 기준이 될 핵심 가치로는 ‘바르게, 빠르게, 다르게’로 설정했다. 구성원들의 구체적인 행동지침이다.
“차별성 낮추는 것들은 버려라”
신한금융그룹의 문화대전환을 역설한 조 회장은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취할 것은 새롭게 서둘러 장착하라”고 주문했다. 앞으로의 40년, 나아가 신한금융그룹 100년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선 취사선택(取捨選擇)이 절실하다는 위기감을 최고경영자는 몸으로 느꼈다.
비즈니스 체계의 다변화와 세대 구성의 다양화, 디지털의 가속화, ESG(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경영 시대 도래 등 조 회장의 38년 근무 기간 동안 겪어보지 못한 복잡다단한 위기 요인들이 거대한 파고로 덮칠 기세를 직관적으로 체감했다.
조 회장이 과감하게 버리라며 ‘Delete’ 키를 지시한 것은 무엇일까.
“내부 관점에서 바라본 업무 프로세스와 직원들의 자부심을 무너뜨리는 요인들, 차별성을 희석시키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과감하게 떨쳐버려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조직의 활력을 좀먹는 것이죠.”
반면 새롭게 장착(Reload)해야 할 가치들로 조 회장은 ‘창업 당시 가졌던 고객 중심의 초심’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직원들의 창의성과 주도성, 미래를 향한 과감한 도전 정신을 주문했다. 버릴 것과 새롭게 얹어야 할 것을 가르는 기준은 고객의 요구라는 한 가지에 모아졌다. 고객의 요구와 행복에 모든 의사결정과 프로세스를 정렬해야 한다고 조 회장은 촉구했다.
직관보다 데이터-실무자에 힘 실어줘
조 회장은 소수 리더의 직관으로 조직이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한곳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리더의 직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대신 많은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서 생생한 데이터와 실무자의 의견에 귀 기울인다. 현장의 목소리로 의사결정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다. 유연하고 빠른 의사결정 체계를 만들기 위해 ‘Speed(속도)와 Agility(유연성), Quickness(민첩성)’를 그룹 계열사들의 조직 구성에 적용하고 있다.
서울 남대문 신한금융그룹 사옥 로비에서는 조 회장의 현장중심 경영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조 회장은 ‘생각과 행동을 현장 속으로, 바르게 빠르게 다르게!’라는 구호로 셀프 리더십을 설정했다.
행원에서 출발해 신한금융그룹 최고사령탑이 되기까지 갖은 우여곡절에도 그를 지탱한 것은 ‘큰형님’ 같은 리더십이었다. 40년을 맞은 지금 신한금융그룹에서 조 회장이 헤쳐 나가야 할 과제도 만만찮다.
순혈주의 버리고 외부 수혈 보강 과제
극복해야 할 점으로 조직의 순혈(純血)주의가 꼽힌다. 경쟁 은행에 비해 순혈주의가 강한 것은 보완해야 할 대목이다. 신한금융지주엔 회계 책임자 등 일부를 제외하곤 내부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메기’ 같은 외부 인재가 들어와 조직을 보다 활력 있게 할 필요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신한금융그룹 자회사 사장 16명 중 7명이 외부에서 스카우트됐지만 핵심 인력의 외부 수혈은 보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신한 사태’를 겪으면서 한창 일을 할 중간 라인이 쇠약해진 부분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조 회장이 미래의 기준으로 삼은 디지털은 은행의 ‘SOL’과 카드사의 ‘pLay’로 고객친화적인 앱으로 평가받는다. 배달앱과 헬스케어 등 일상 전반으로 신한의 디지털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오늘 40주년 생일을 맞이한 신한금융그룹의 모태(母胎)인 신한은행이 또 한번 비상(飛上)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출발선상에서 조용병호(號)가 용틀임을 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