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코스피는 21.7% 하락해 30년 내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1980년 1월 4일 코스피 산출 이래 두 번째로 나쁜 성과로, 최악의 성과(1990년 상반기 -22.3%)와 0.6%p 차이에 그쳐 역대급 하락이라고 부를 만하다.
상반기 주가 하락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지수도 -18.8%를 기록해 1987년 이후 역대 두 번째 하락을 나타냈다. 신흥국 지수가 가장 많이 빠졌던 상반기는 1998년으로 19.9% 하락했다. 1998년은 우리에게 잊히지 않는 해다.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때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은 1997년 12월 3일 이뤄졌으며 이 시기 태국, 홍콩,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연쇄적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해 ‘1997 아시아 금융위기(1997 Asia Financial Crisis)’로 불린다.
전 세계 주가지수 하락폭 20~30%
상반기 주가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하락했다. 미국 대형주(S&P500)는 같은 기간 20.6% 하락해 1970년(-21.0%) 이후 52년 만에 -20%대라는 최악의 성과를 보였고 독일, 프랑스 등도 -20% 전후로 하락했다. 미국 기술주 지수인 나스닥은 상반기 29.5%나 떨어졌다. 지수를 산출하기 시작한 1980년 이후 최악의 기록이다. 두 번째로 나빴던 해는 2002년(-25.0%)으로 IT(정보기술) 버블이 꺼진 시기였다. 3위 이후로는 -14% 이내 하락폭이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주가지수에 투자한 경우 하락폭은 20~30% 수준이었으나 실제 투자자가 체감한 손실 폭은 훨씬 컸다. 나스닥 지수 3배 추종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인 TQQQ는 71%나 하락했다. 연초에 1000만 원을 투자했다면 현재 잔고가 290만 원인 상황이다. 원금이 3분의 1 토막 난 것이다. 올해 초 국내 개인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미국 주식 2위는 TQQQ였다. TQQQ의 인기 비결로 과거 우수했던 성과를 들 수 있는데 2019년 126%, 2020년 100%, 2021년 91% 등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서학개미의 사랑을 받은 순매수 1위는 테슬라였고,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주식이 순매수 상위권에 포함됐다. 이들 주식의 상반기 성과를 보면 넷플릭스가 -71%로 가장 많이 하락했다. 그다음으로 메타(페이스북) -52%, 테슬라와 아마존 각각 -36%, 알파벳(구글) -25%, 애플 -23% 순이다. 이런 종목이나 산업에만 투자했다면 꽤나 고통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을 것이다. 주가 하락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서학개미만이 아니다. 코스피 대장주 격인 삼성전자 주가는 상반기 27% 하락해 주당 5만7000원 수준이다. 지난해 초 고점인 9만6800원에서 절반 가까이 하락해 ‘십만전자’를 꿈꾸던 개인투자자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하반기 하락 vs 상승
투자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주가 하락만이 아니다. 역대급으로 치솟는 물가 역시 투자자를 불안에 휩싸이게 하고 있다. 전 세계를 인플레이션 공포로 몰아넣은 원인 중 하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많이 의존하는 유럽은 이번 전쟁으로 물가상승이라는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독일 소비자물가는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인플레이션 수준 역시 73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전쟁만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침체를 우려한 각국 중앙은행이 시중에 풀어놓은 막대한 유동성도 인플레이션의 원인에서 큰 축을 담당한다. 미국 인플레이션도 심각한 수준으로 1981년 이후 40년 만에 가장 큰 물가상승폭을 보이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6.0% 상승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월 이후 2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
투자자의 관심은 역대급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약세장을 보이던 상반기 주식시장이 하반기에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에 쏠려 있다. 상반기 추세가 여전히 남아 있어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 의견도 있다. 코스피의 추가 하락을 주장하는 이들은 2000년 IT 버블 붕괴 시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를 사례로 든다. 2000년 코스피는 상반기 20.1% 하락한 데 이어 하반기에는 39%나 더 빠졌다(표 참조). 2008년에도 상반기에 11.7% 하락한 후 하반기에는 33%나 더 내려앉았다. MSCI 신흥국 지수도 비슷했다. 2000년 상반기 9% 하락 이후 하반기에 25% 추가 하락했고, 2008년에는 상반기 12.7% 하락에 이어 하반기에 48%나 더 빠졌다. 2008년 S&P500 지수는 상반기 12.8% 하락에 이어 하반기 29% 더 빠졌으며, 나스닥 지수도 상반기 13.5% 하락 후 하반기 31% 추가 하락했다.
이런 이야기만 듣는다면 비관이 극단을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상반기 주가 하락이 하반기까지 이어진다는 주장이 확률적으로 근거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상반기 하락 이후 하반기에 반등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코스피의 경우 1998, 1992, 2013, 1991년 하반기 각각 89%, 23%, 8%, 1% 상승했다. 신흥국 지수는 2020, 2010, 2013, 1994년 하반기에 각각 30%, 25%, 7%, 3% 상승폭을 기록했다. S&P500 지수의 경우 최악의 상반기를 보낸 9번 중 5번의 해가 하반기에 상승을 나타냈는데, 상승폭이 6~56%였다. 나스닥은 9번 중 6번이 하반기에 상승했다.
주가 하락 시 수익이 나는 인버스 ETF에 투자했거나 공매도 등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가가 오르기만 바랄 것이다. 주가 상승을 바라는 마음은 늘 한결같지만 요즘 같은 역대급 하락장에서는 더욱 간절할 테다. 하지만 매정하게도 주가는 투자자의 바람과 상관없이 움직인다. 하반기 주가 향방은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뿐이다. 내년 1월이 되면 올해 하반기 주가 방향을 맞혔다는 전문가들이 다시 나올 것이다. 주가가 오르든 떨어지든 횡보하든 맞힌 이는 늘 나오기 마련이다.
상반기 원/달러 환율 9% 상승
특정 종목, 특정 산업, 혹은 특정 국가 주식에 투자금이 집중돼 있다면 하반기 주가 향방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빚을 내 투자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특히 초보 투자자라면 어찌할 바를 모를 수 있다. 주식시장이 늘 상승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많은 투자자가 격하게 느낀 상반기였다.
이런 시기 개인투자자가 생각해야 할 것은 자신의 위험 감내도다. 위험 감내도란 얼마나 큰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뜻한다. 초보자이거나 큰 위험을 감당하는 것이 불안하다면 기존 투자 방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상반기 주식, 국채 등 많은 자산이 하락했지만 상승한 자산도 있다. 대표적으로 원/달러 환율은 9%나 상승했다. 현금성 자산 역시 포트폴리오를 보호해주는 자산 중 하나다. 이렇게 움직임이 다른 자산에 나눠 투자함으로써 포트폴리오 위험을 낮추고 적정 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자산배분 투자라고 한다. 올해 상반기는 투자에 나설 때 높은 상승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위험을 낮추는 전략도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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