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와 체코 원자력발전소 수주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 프랑스 정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약 50조 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외교전까지 벌이는 형국이다. 한국이 원전 시공기술과 경제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 미국, 프랑스는 외교력에서 한발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장기간 원전건설 중단 美佛 시공능력 저하
10일 정부와 원전업계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 1기 건설 사업제안서를 올해 11월 말까지 제출하기로 했다. 앞서 4월 한수원은 폴란드 원전 6기 건설 사업제안서를 냈다. 한수원은 계약단가와 납기일, 원전 기술력에서 한국의 이점을 강조한 제안서 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폴란드와 체코 원전건설 규모는 약 50조 원. 폴란드 정부는 2043년까지 2개 부지에 6∼9GW(기가와트)급 원전 6기를 순차 도입할 예정이다. 최종 사업자는 2024년에 결정된다. 체코는 8조 원 규모의 원전 1기를 우선 세우고 이후 3기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최종 사업자는 2024년 말 결정된다.
폴란드와 체코 원전 입찰에는 한수원 외에 미국의 웨스팅하우스(WEC)와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뛰어들었다. 이 중 한수원의 경우 한국형 원전 모델(APR1400)이 적용된 신고리 3·4호기 등 10기가 가동 중이거나 준공을 앞두고 있다. 그만큼 안전성이나 시장성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끝났다는 얘기다. 하지만 약 10∼30년 동안 원전을 짓지 않은 미국과 프랑스의 경우 원전 시공능력이 떨어져 준공을 하고도 수년째 상업운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성에서도 한국 원전이 앞서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 원전(APR1400)의 kW(킬로와트)당 건설단가는 3717달러로 미국(1만1638달러)이나 프랑스(7809달러)의 약 30∼50%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유럽연합(EU)이 친환경 투자기준인 녹색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고, 윤석열 정부가 원전 확대를 결정한 것도 한국 원전의 수출 전망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에너지 정책방향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약 4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 미국 끌어들여 ‘공동전선’ 대안도
다만 원전 수출은 기술력이나 가격으로만 결정되는 일반 상품과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핵폐기물이 나오는 원전의 특수성과 천문학적 계약금액 등으로 인해 국가 간 외교전이 수주 경쟁에서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 예컨대 이명박 정부가 사실상 프랑스 수중에 넘어간 아랍에미리트(UAE) 바카라 원전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건 국방 분야를 포함한 전방위 외교전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체코와 폴란드는 프랑스와 같은 EU 회원국이라는 점에서 외교력에서 한국이 밀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방과 외교 분야에서 초강대국인 미국 역시 한국이 상대하기는 버겁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가 동맹국인 미국과 손을 잡고 공동 수주에 나서는 게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한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한국의 기술과 미국의 외교력을 결합해 프랑스와 경쟁하는 게 원전 계약을 따낼 수 있는 묘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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