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사상 첫 ‘빅 스텝’]국내 첫 금리 빅스텝 단행 배경
이창용 “고물가 지속땐 모두 피해”… 경기침체 감수하고 선제 금리처방
“올 연말 금리 2.75~3% 합리적”… 연내 두세 차례 더 인상 예고
금리 올리면 소비-투자는 둔화… 전문가 “침체 가능성 높아졌다”
“지금 선제 대응하지 않으면 더 큰 피해가 올 수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3일 ‘빅 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후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초강수’를 둔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경기침체의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 당장 고물가에 대응하지 않으면 경제 전반이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부터라도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조금씩 고통을 분담해야만 전쟁과 공급망 위기, 팬데믹 등으로 비롯된 글로벌 경제 복합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다.
○ “경기보다 물가부터 챙겨야”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번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 건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줘서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0%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월(6.8%) 이후 처음으로 6%대에 진입했다. 이 총재는 “3%대 물가상승률이 5%대가 될 때까지 7개월이 걸렸으나, 5%대에서는 한 달 만에 6%대로 높아졌다”며 “물가상승률이 5%를 웃도는 품목 비중이 50%에 이르는 등 물가 상승의 확산 정도도 보다 광범위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어느 때보다 빠르게 확산하며 우려를 키우고 있다. 경제 주체들이 예상하는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기대인플레이션율)은 지난달 3.9%로 한 달 만에 0.6%포인트 올랐다. 상승폭이 2008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이 총재는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각 경제주체가 가격과 임금을 서로 올리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고물가가 고착돼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이럴 경우 큰 침체 없이는 고물가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인플레 심리를 사전에 차단하지 않는다면 물가 대처가 앞으로 더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 연말 기준금리 3%까지도 전망
‘인플레 파이터’로서 방향을 확실히 잡은 한은은 앞으로도 금리인상 행진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총재는 올 연말 기준금리가 2.75∼3.0%까지 오를 것이란 시장 전망에 대해 “합리적”이라고 답했다. 올해 앞으로 남은 8, 10, 11월 금통위 회의에서 연속으로 금리 인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2.75%가 될지 3.0%가 될지는 주요 선진국이 금리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하반기(7∼12월) 경기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 등 여러 요인에 달렸다”고 했다.
다만 이 총재는 “당분간 25bp(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추가 ‘빅 스텝’ 여부에 일단은 선을 그었다. 한은의 이런 판단은 ‘빅 스텝’과 같은 충격 요법을 연속적으로 사용할 경우 물가를 잡기도 전에 경기침체와 빚 부담 증가 등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물론 향후 물가 상황 등 경제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한은이 긴축 속도를 높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 경기 타격은 불가피
한은이 더 큰 침체를 막기 위해 미리 ‘예방 주사’를 놓았다고는 하지만, 이날 ‘빅 스텝’ 결정으로 인해 실물경기에는 일정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리를 올리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져서 소비와 투자를 둔화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도 이날 “시차가 있지만 기준금리를 1%포인트 올리면 연간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 하락하는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5월 전망치(2.7%)를 밑돌고 경상수지 흑자도 전망치(500억 달러)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등 대내외 불확실성 때문에 경기 하방 위험이 매우 크다”며 “경기가 예상보다 둔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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