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50일째인 21일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와 근로자 간 협상은 임금 인상률에선 타협점을 찾았지만 손해배상 소송 청구 문제로 진통이 거듭됐다.
이날 조선업계 및 노동계에 따르면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하청지회)는 대우조선 사내협력사협의회(협력업체 측)가 제시한 올해 임금 4.5% 인상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하청지회가 협력업체들과 대우조선에 손해배상 관련 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걸면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협력업체들과 대우조선으로서는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소 제기 대상을 하청지회 집행부 5명으로 한정하는 것으로 좁혀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테이블에선 5명에게만 소를 제기하면 배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견해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이 표류하는 가운데 경찰이 공권력 투입을 검토하고 나서자 노동계가 크게 반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공권력을 투입하면 정권 퇴진 투쟁으로 맞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민노총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정규직 노조)는 금속노조 탈퇴를 위한 전체 조합원 대상 찬반투표를 시작했다. 투표 결과는 22일 오후에 나온다.
대우조선 막판 협상… ‘노조 집행부 5명한정 손배소’ 대안 떠올라
노사 ‘임금 4.5% 인상’은 의견 모아 하청노조 “임금 인상안 크게 양보… 사측, 손배청구-고발 취하를” 주장 협력사-대우조선 “처벌없이 끝내면 나쁜 선례 남고 배임” 수용불가 고수 쌍용차, 당시 금속노조 손배소 진행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사의 임금단체협상이 재교섭 일주일째를 맞은 21일 ‘민형사상 소송 면책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됐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와 협력사는 전날(20일) 오후 11시 반까지 이어지는 마라톤협상 끝에 ‘임금 인상 4.5%’를 인정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하청지회는 이날 “임금 인상 요구안을 크게 양보한 만큼 손해배상 청구와 형법상 업무방해죄 고발을 취하하고 이후 추가 제소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력사 대표들과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이를 받아들이긴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맞섰다. 불법 파업이 아무런 처벌 없이 끝나면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고, 업무상 배임죄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날까지 파업에 가담한 조합원이 소속된 22개 협력사 측이 하청지회에 제기한 민형사상 소송(고발)은 대여섯 건으로 알려졌다. 협력업체 한 관계자는 “업무를 방해하고 욕설에 협박까지 했던 직원들이 어떠한 자기반성도 없이 교섭을 마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협력업체들이 협상에서 무제소를 약속한다고 해도 하청지회엔 더 큰 걸림돌이 남아 있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손해배상 청구는 불가피하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서다. 이날까지 대우조선해양이 입은 손실액은 7000억 원이 넘어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이자 채권단인 KDB산업은행 측은 대우조선에 대한 추가적인 자금 지원은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파업 장기화로 정상적인 회사 운영이 불가능해지면 결국 회생 절차 신청 등의 방법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법원이 회생 가능성을 따져 기업회생 절차를 밟거나 청산 절차를 밟게 된다.
이에 따라 협상 과정에서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되 그 대상을 하청지회 집행부 5명으로 한정하는 대안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경우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전문가 해석도 협상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원청인 대우조선도 이 같은 조건에 일정 부분 동의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타결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타협이 이뤄진다 해도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대우조선 주주사나 다른 협력사들이 소를 제기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배임죄는 형사처벌 대상이기 때문에 이 같은 합의가 법적 책임을 완전히 해소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배임죄는 형사처벌 대상이기 때문에 대우조선이 정부나 산업은행과 협의를 통해 무제소를 선택한다 해도 경영진이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우조선 경영진은 손해배상 청구권을 포기하면 형법상 배임죄는 물론이고 손배소까지 뒤집어쓸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공권력이 투입되고서야 마무리됐던 ‘쌍용자동차 사태’가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쌍용차는 2009년 77일간 지속됐던 파업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 노조원 개인과 금속노조에 손배소를 제기한 바 있다. 이 중 금속노조에 대한 30여억 원의 손배소는 취하하지 않았고, 아직 대법원 선고를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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