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진의 경매 따라잡기]유치권 얽힌 땅도 해법만 찾으면 황금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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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가 50억 공사비 못 받자 유치권 설정해 현장 건물 점유
경매 나온 토지는 거듭 유찰
기존 판례 분석뒤 12억에 낙찰
건물 철거-명도소송 진행하며 건설사에 38억에 다시 팔아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대표변호사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대표변호사
요즘 특수물건 경매가 인기다. 특수물건은 법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보니 유찰을 거듭하지만 해법만 정확히 숙지하고 있다면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 특수 물건 중 ‘유치권 신고된 물건’을 흔히 찾을 수 있다. 유치권이란 공사업자가 공사 대금을 받지 못했을 때 해당 건물을 유치, 즉 점유할 수 있는 권리이다. 낙찰자가 유치권을 넘겨받기 위해서는 공사대금을 전액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유치권이 신고된 물건은 많이 유찰될 수밖에 없다. 해결이 어려울 것 같지만 유치권 신고된 물건도 맥만 잘 짚으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수년 전 경기 평택시에 있는 한 공장용지 3299m²(약 1000평)가 경매에 나왔다. 주변에 유사 업종 공장들이 몰려 있었고 고속도로 나들목(IC)도 가까워 입지가 꽤 좋았다. 감정가는 22억여 원이지만 두 번 유찰돼 10억8000만 원까지 떨어졌다. 매각물건명세서를 보니 거액의 유치권이 신고돼 있었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에서 50억 원 가까운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현장을 점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낙찰자가 인수해야 할 유치권 금액이 시세를 훌쩍 넘으니 애초 낙찰이 불가능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K 씨는 매각물건명세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쾌재를 불렀다. 물건명세서에는 ‘입찰 외 소유자 미상의 건축이 중단된 3층 건물 소재’라는 공지가 붙어 있었다. 이 의미는 준공이 안 된 지상 건물을 제외하고 토지만 입찰한다는 얘기였다. 지상 건물은 판례가 요구하는 지붕과 기둥, 주벽을 모두 갖추고 있어 건물로 보기에 손색이 없었다.

물건의 가치에 주목한 K 씨는 해당 건물에 땅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 즉 법정지상권이 성립하는지 검토해 봤다. 이 건물에 법정지상권이 성립된다면 건물 철거를 할 수 없어 토지의 활용도가 떨어진다. 30년간 지료(地料)밖에 청구할 수 없으니 토지 소유자로서는 낭패다. 다행히 법정지상권은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됐다.

문제는 거액의 유치권이었다. 항간에 유치권의 90%는 허위라는 속설이 떠돌지만, 유치권자가 국내 유수의 건설업체여서 진정한 유치권으로 추정됐다.

계속 법적 검토를 해보던 K 씨는 이 사안에 딱 맞는 판례를 찾아냈다. 법정지상권이 성립되지 않는 건물의 유치권자는 토지 소유자에게 유치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판례였다. 어차피 철거될 운명의 건물은 유치권을 인정해주지 않겠다는 취지다. K 씨는 용기 있게 입찰에 나섰고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낙찰받았다. 낙찰가는 감정가의 56%에 불과한 12억5000만 원이었다.

권리 관계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은행을 설득해 낙찰가의 80%까지 대출을 받았다. K 씨는 곧바로 건축주와 유치권자를 상대로 건물 철거와 명도 소송을 진행했다. 유치권자에게는 따로 접근해 건물 철거를 빌미로 토지를 매입하라고 압박했다. 50억 원에 가까운 공사비가 투하된 건물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건설업체는 결국 38억 원에 토지를 매입했다. 부대 비용을 포함해 대략 13억 원 정도에 해당 토지를 매입한 K 씨는 단기간에 시세차익만 25억 원을 얻었다. 대출을 제외한 실제 투자금은 고작 3억 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다.

토지를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매입했으니 유치권자가 큰 손해를 본 것 같지만, 철거될 건물을 살렸으니 사실상 유치권자도 이득이었다. 이것이 바로 특수물건 경매의 매력이다. <끝>
#특수물건#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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