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서울 용산구 용산정비창, 종로구 세운재정비촉진지구(세운지구), 노원구 하계5단지 등 도심 곳곳을 고밀 복합개발하겠다는 구상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9일 발표하는 윤석열 정부 ‘250만 채+α 공급대책’에서 민간주도 도심복합개발 방안을 내놓는다. 민간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고 역세권 등 도심을 복합개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고밀 복합개발이 도심 교통난을 일으키는 등 기반시설을 포화상태로 만들고 민간에 과도한 개발이익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밀 복합개발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계획 단계에서 교통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또 사업성을 면밀히 따지는 한편 개발이익 환수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하계 5단지 교통난 우려”…세운지구도 재정비 필요
4일 만난 하계5단지 인근 주민들은 벌써 고밀개발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하계5단지 인근은 광역교통망이 7호선 하계역 하나뿐인 데다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는 “지금도 출퇴근 시간에 막히는데 용적률을 4배로 올리면 교통지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주민 A 씨는 “인근 민간 아파트 단지들도 재건축을 추진 중인데 감당이 안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일(현지 시간) 싱가포르 공공주택 ‘피너클 앳 덕스턴’을 찾아 “노후 임대주택 용적률을 평균 100%대에서 300∼500%로 확대해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같은 임대주택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오 시장이 모델로 언급한) 타워팰리스는 용적률이 높지만 서울지하철 3호선과 수인분당선 환승역인 도곡역이 있고, 주변 도로정비가 잘돼 있어 하계5단지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세운지구도 교통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시는 토지용도 제한을 푸는 ‘비욘드 조닝’을 적용해 용도·용적률 제한 없이 세운지구를 고밀 복합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세운지구는 지하철 등 대중교통은 충분하지만 도로가 문제”라며 “도로망을 재정비해야 주변 지역과 조화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 “용산, 역 중심으로 계획 재검토해야”
1500% 이상 용적률을 풀어주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용산정비창 역시 용산역과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용산역은 KTX·지하철 1호선·경의중앙선이 지나고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노선도 예정돼 있다. 신분당선도 추진 중이다. 용산역을 통해 불어나는 이동량을 흡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재는 용산정비창 부지 가운데에 초고층 건물을 세우고, 주변은 상대적으로 용적률이 낮은 주거지를 조성하도록 계획이 세워진 상태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초고층 건물을 용산역 쪽으로 배치하는 등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명예교수는 “신분당선과 GTX를 수직으로 연계해 짧은 시간 안에 KTX나 지하철로 환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도로망 지하화 역시 집중되는 교통량이 강남, 여의도, 경부고속도로 등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심 교통 흐름을 전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업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하계5단지는 실현 가능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오 시장이 예로 든 피너클 앳 덕스턴은 싱가포르에서도 한 곳뿐인 상징적인 공공주택인데, 서울 모든 임대주택을 이런 수준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급화를 하려면 건축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세입자가 낼 임차료가 높아지거나 서울도시주택공사(SH) 등 공공이 비용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개발 계획단계에서부터 민간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용산은) 사업시행자가 SH와 코레일인데 두 기관은 디벨로퍼 경험이 매우 부족하다”며 “기획 단계에서 고밀 복합개발 역량이 있는 민간의 아이디어를 받고, 개발이익도 공공과 민간이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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