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비싼 이른바 ‘깡통주택’이 지방은 물론 수도권까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상반기 전세보증금 사고액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세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금리 인상과 대출규제 여파로 집값이 하락세로 전환되면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 때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전세를 끼고 매매하는 ‘갭투자’나 처음부터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나 의사가 없이 전세게약을 체결하는 이른 바 ‘나쁜 임대인’들도 여전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세보증 사고액 3407억원…역대 최대
7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집주인이 전세계약 만료 후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않은 전세보증금 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 금액은 3407억원으로 상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금액은 지난 2020년 4682억원, 지난해에는 579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는 상반기 사고금액만 지난해의 58.8%에 달하는 3407억원으로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또다시 최고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상반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가 발생한 주택 유형을 살펴보면 다세대 주택이 924건(1961억원)이 가장 많았다.
이어 ▲아파트 389건(909억원) ▲오피스텔 211건(413억원) ▲연립주택 47건(93억원) ▲단독주택 12건(19억원) ▲다가구주택 12건(12억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세입자들의 피해가 컸다. 서울의 피해액은 1465억원(622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경기는 1037억원(420건), 인천 582억원(335건)으로 수도권 피해액(3084억원)이 전체의 90.5%를 차지했다.
◆전세사기 이어 깡통주택까지…세입자 ‘주의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전세사기’ 유형으로는 ▲무자본·갭투자 ▲부동산 권리관계 허위고지 ▲위임범위 초과 계약 ▲허위 보증·보험 등이 있다.
최근에는 전세가격이 매매가격과 비슷하거나 되레 높은 ‘깡통주택’이 늘면서 집주인이 집을 매도하고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통상 부동산 업계에서는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80%를 넘으면 추후 집을 팔아도 대출금이나 전세보증금을 충당하기 어려운 ‘깡통전세’가 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에서는 특히 빌라(연립·다세대주택)에서 깡통주택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플랫폼업체 ‘다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이뤄진 서울의 신축빌라 전세 거래량 3858건 중 815건(21.1%)이 전세가율 9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전셋값이 매매가와 같거나 더 높은 경우도 593건으로 조사됐다.
지역별로는 강서구가 전체 전세 거래 694건 중 370건(53.3%)이 깡통주택으로 집계됐다. 특히 화곡동은 304건으로 강서구 깡통주택의 82.2%를 차지할 만큼 그 비율이 높았다.
다방 관계자는 “깡통주택의 기준을 매매가의 80%로 보는 경우도 있어 이 점을 감안하면 실제 깡통주택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현재 부동산 시장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 하반기에도 금리 인상이 예고되고 있어, 이에 따른 거래량 실종과 매매가 하락으로 깡통전세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예방법안 발의 됐지만…여야 대치에 상임위 계류
정부와 국회도 이같이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전세가율 급등 지역을 특별 관리하고, 전세사기를 예방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우선 임차인들의 보증금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전세가율 급등 지역 등 위험지역을 사전 특별 관리할 계획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0일 제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전세가율 상승 등 우려 징후가 발견되는 지역에서는 위험 계약이 체결되지 않도록 지자체 등에 미리 주의 지역으로 통보하고 특별 관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도 전세사기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법안들이 발의돼 있지만 여야의 대치 국면이 길어지면서 상임위에 계류 중인 법안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나쁜 임대인 공개’ 법안이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5월 전세보증금을 고의로 또는 상습적으로 돌려주지 않은 임대사업자의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지난해 9월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에 회부된 뒤 감감무소식이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1월 임차인의 제3자에 대한 대항력 발생 시기를 주민등록을 갖춘 다음날 발생하는 제도적 허점을 악용하는 임대 사기를 막기 위한 ‘주택임대차법 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임차인이 주민등록을 마친 즉시 제3자에 대해 대항력이 발생하도록 하고, 같은 날 등기가 된 저당권 등 다른 물권 변동과의 우선순위는 접수된 순위에 따르도록 했지만 이 법안은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조차 못했다.
전문가들은 전세보증금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세입자들이 선순위 권리를 확인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한편,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계약시 전세사기를 막기 위한 특약 설정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세입자들이 근저당권은 확인할 수 있지만 선순위 임차권 여부는 알 수가 없는 만큼 임대차 계약 체결 전에 권리관계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주민등록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아도 익일 0시부터 대항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신고 즉시부터 0시까지 선순위 저당권을 설정하지 않는다는 특약을 맺거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상품에 가입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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