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외국인을 대기업집단 총수(동일인)로 지정하는 방안이 미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로 보류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대기업집단이 된 쿠팡은 당분간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분류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총수의 친족 범위가 4촌 이내 혈족, 3촌 이내 인척으로 축소된다. 혈족과 인척 범위가 동시에 줄어드는 건 특수관계인 규정이 생긴 1986년 이후 처음이다.
10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다음 달 20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친족 등 특수관계인과 계열회사 범위가 합리적으로 개편돼 과도한 기업 부담을 개선하면서 제도의 실효성도 제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개정안에는 당초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었다. 동일인이란 기업의 실질 지배자로, 직급과 상관없이 공정위가 의사결정 구조를 파악해 지정한다. 기존 시행령에는 외국인에 대한 총수 지정 기준이 규정돼 있지 않았다. 미국 국적이라 총수로 지정되지 않은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대표적인 예다.
쿠팡을 비롯해 외국인이 지배하는 국내 기업이 늘면서 공정위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시행령에 외국인 총수 지정 기준을 마련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부 일각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혜국대우 조항 위반에 따른 통상마찰 우려가 제기됐다. 미국 정부의 반대도 영향을 끼쳤다. 공정위에 따르면 올 4월 한미 정상회담 준비 실무회의에서 미국은 자국민을 대기업집단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방안에 우려를 표시했다.
매년 5월에 이뤄지는 동일인 지정에 적용되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에서 외국인 규정이 빠짐에 따라 김 의장은 일단 내년까지는 규제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윤 부위원장은 “시행령 개정에만 6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걸 감안하면 내년에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개정안에는 총수 특수관계인에 포함되는 친족 범위를 변화된 국민 인식에 비해 친족 범위가 넓다는 지적에 따라 현재의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에서 ‘4촌 이내 혈족, 3촌 이내 인척’으로 축소한다. 다만 총수 측 회사 주식을 1% 이상 갖고 있거나 총수 및 총수 측 회사와 채무보증·자금대차 관계가 있으면 5, 6촌 혈족이나 4촌인 인척도 친족에 포함된다. 이에 따라 대기업 친족 수는 지난해 5월 기준으로 8938명에서 4515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특수관계인에 포함되는 친족은 주식 소유 현황 등의 자료를 매년 공정위에 제출해야 한다.
현재 특수관계인에서 제외돼 있는 사실혼 배우자도 친족에 포함된다. 다만 법적 안정성과 실효성을 위해 법률상 친생자 관계가 성립된 자녀가 있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이에 따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사실혼 배우자가 친족으로 인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종=서영빈 기자 suhcrat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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